[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이런 역설적 도우미들이 또 있을까.
류지현 호가 벼랑 끝에서 뚫어낸 바늘구멍 같은 8강행 티켓. 그 뒤에는 아이러니 하게도 올시즌 KBO리그에서 뛸 호주 선수들의 '본의 아닌' 조력이 있었다.
한국 야구대표팀은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WBC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호주를 7대2로 격파했다. '5점 차 이상 승리, 2실점 이하'라는 극악의 경우의 수를 마지막 9회에 완성하며 17년 만의 2라운드 진출이라는 기적을 일궜다.
'동료' 문보경에게 무너진 웰스, '잠실에선 웃으며 만나자'
기적의 서막을 연 것은 LG 트윈스의 '국대 보물' 문보경이었다. 그의 제물은 다름 아닌 올 시즌 LG의 아시아쿼터 외국인 투수이자 문보경의 팀 동료 라클란 웰스였다.
웰스는 지난해 키움 히어로즈에서 대체 선수로 뛰며 한국 타자들을 잘 안다고 자부했지만, 정작 '미래의 동료' 문보경을 넘지 못했다. 2회초 문보경은 웰스의 슬라이더를 그대로 잡아당겨 비거리 131m짜리 대형 선제 투런포를 쏘아 올렸다. 기선을 제압당한 웰스는 결국 조기에 무너지며 호주 패배의 단초를 제공했다.
KIA 데일의 통한의 실책, '약속의 9회'를 만들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9회초에 찾아왔다. 한국이 8회 1실점 하며 6-2로 8강 진출 조건(5점 차 이상)에 단 1점이 모자라던 상황. 1사 1루에서 이정후의 땅볼 타구가 굴절되며 호주 유격수 제리드 데일에게 향했다.
올 시즌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 무대를 밟을 예정인 데일은 병살을 의식해 급하게 송구하다가 통한의 송구 실책을 범했다. 병살로 이닝이 끝날 수도 있었던 상황이 1, 3루 위기로 변했고, 결국 안현민의 희생플라이가 터지며 한국은 '운명의 7점째'를 뽑아낼 수 있었다. 호주로서는 탈락의 빌미가 된, 한국으로서는 8강행 문을 연 결정적 실책이었다.
울산웨일즈 외인타자, 호주 4번 알렉스 홀의 침묵
호주의 4번 타자이자 울산웨일즈 외국인 타자 알렉스 홀 역시 한국 투수진의 화력 앞에 침묵했다.
경기 후반 포수 마스크까지 쓰고 투혼을 발휘했지만, 타석에서는 3타수 무안타로 힘을 쓰지 못했다. KBO리그 산하 팀에서 활약하며 한국 야구에 익숙했던 그였지만, 정작 중요한 고비마다 한국 투수들의 공략에 막히며 팀의 패배를 지켜봐야 했다.
KBO리그와 좋은 인연을 만들어갈 호주 선수들. 본의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의 8강 진출을 돕는 모양새가 됐다. 벼랑 끝에서 살아난 한국은 이제 '약속의 땅' 도쿄를 떠나 마이애미에서 유력 상대 후보인 도미니카공화국 또는 베네수엘라와 4강행을 다투게 된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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