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의 포성이 울렸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랍 산유국들이 이스라엘 편에 선 미국에 석유 수출을 끊어버리자, 배럴당 3달러이던 원유가는 순식간에 12달러로 치솟았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처음 맞닥뜨린 오일쇼크였다.
중화학공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던 한국 경제는 산업화가 뿌리째 흔들리는 시련에 빠졌다. 정부는 TV 아침 방송을 중단하고 택시 3부제를 강제하는 등 기름 한 방울이라도 아끼려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1973년 3.2%이던 물가 상승률은 1974~75년에 걸쳐 연 25%로 폭등하며 민생을 짓눌렀다.
두 달 전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된 시점이었지만, 박정희는 뜻밖의 결정을 했다. 혈맹 미국과 이스라엘 대신 아랍 편에 선 것이다. 무슬림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서울 한복판에 모스크 부지를 내준 것도 이때였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한남동 산 꼭대기에 있는 한국 최초의 모스크인 서울중앙성원이다.
아랍권은 자신들을 지지한 한국에 경제 진출의 문을 열어주며 화답했다. 기름과 달러를 확보하려는 우리 기업들은 앞다퉈 중동의 사막으로 뛰어들었다. 정주영의 현대건설은 1976년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수주하며 중동 건설 신화의 막을 올렸다. 수주액 9억 3천만 달러는 당시 한국 연간 예산의 25%에 달하는 천문학적 규모였다.
실리 외교 덕분에 오일 머니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한국은 전 세계적 경기 침체 속에서도 9%대의 경이로운 성장률을 이어갔다. 오일쇼크를 가장 빠르게 극복한 나라로 기록되며 1977년에는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하고 1인당 GNP 1천 달러의 벽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안으로는 에너지 자립을 향한 담대한 행보가 뒤따랐다. 박정희 정부는 독자 핵무장을 우려한 미국의 노골적 견제 속에서 원자력발전을 국가 핵심 전략 산업으로 정하고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확대했다. 그 결정으로 1980년대 고리 2·3·4호기와 월성, 영광, 울진 원전이 속속 가동되며 한강의 기적을 완성할 수 있었다.
지금 다시 중동이 전운에 휩싸이고 있다. 이란과 미국·이스라엘의 충돌로 유가가 요동치고, 들뜨던 증시는 공포에 얼어붙었다. 미국이 이란 유전을 타격하고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맞선다면, 글로벌 경제를 일시에 추락시킬 3차 오일쇼크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그러나 막연한 종전 기대에 잠겨 있을 때가 아니다. 1차 오일쇼크 때 사막에서 달러를 캐내고 원전 건설에 박차를 가한 덕분에 1979년~82년 2차 오일 쇼크도 버텨냈듯이, 지금은 이란 사태 이후를 내다보며 고유가 시대를 관통할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다.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고효율 탄소 저감 산업이 그 답일 수 있다.
중동의 위기는 한국에 늘 고통이었으나, 동시에 산업 생태계 전환을 재촉하는 기제이기도 했다. 오늘의 위기 역시 에너지 확보 구조를 근본적으로 혁신할 응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바람이 불 때 누군가는 벽을 쌓고 누군가는 풍차를 돌린다. 지금 이재명 정부가 깊이 새겨야 할 격언이다.
j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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