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마음이 너무 급했다. 마운드 위의 투수가 갑자기 파울지역으로 쇄도했다. 슬라이딩하며 더그아웃 앞 난간에 쿵 하고 부딪혔다.
18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잘 던지던 롯데 외국인 투수 제레미 비슬리의 예상치 못한 행동이었다. 열정은 좋았지만, 지나친 열정은 팀에 해가 될 수 있음을 망각한 행동이었다.
비슬리는 이날 2회까지 삼진 4개를 빼앗으며 호투중이었다. 최고 156㎞에 달하는 묵직한 직구가 한화 타자들을 난감케 했다. 페라자가 안타를 쳤을 뿐, 다른 한화 타자들의 방망이는 추풍낙엽이었다.
3회에야 비로소 한숨을 내쉬었다. 1사 후 이원석이 153㎞ 직구를 통타해 3루타를 쳤고, 페라자가 우익선상 1타점 2루타를 치며 선취점을 뽑았다.
문제는 그 다음 문현빈 타석이었다. 볼카운트 1B2S에서 145㎞ 포크볼이 폭투가 됐는데, 롯데 포수 손성빈의 몸에 맞고 평소보다 훨씬 크게 튀었다. 더그아웃 앞까지 튕겨나갔다.
순간 마음이 너무 급했다. 비슬리는 육중한 움직임으로 쿵쿵쿵 뛰어 1루 더그아웃 앞으로 공을 줍기 위해 달려갔다. 슬라이딩까지 해가며 볼을 빨리 처리하고자 하는 열정을 뽐냈다.
어차피 거리나 반응 속도를 감안하면 투수는 포수 또는 1루수가 처리할 때까지 기다리는게 맞다. 1루수 노진혁이 빠른 선수가 아님에도 결국 공에 먼저 도달한 선수는 노진혁이었다. 주자를 잡기 위한 송구 문제를 감안해도 투수보다는 야수가 낫다.
순간 멀리 튀는 폭투를 본 비슬리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빨리 주워 던지려는 생각 밖에 없었을 것이다. 때론 그런 열정적인 투혼이 경기 흐름을 바꾸고 분위기를 띄우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때는 아니었다. 투수, 특히 최소 5이닝 이상을 책임지길 요구받는 선발투수는 자기 혼자만의 몸이 아니다. 너무 격하게 움직이면서 비슬리의 몸에 탈이 났다. 문현빈의 2루 땅볼, 강백호의 적시타가 이어지며 순식간에 3실점.
이때 비슬리가 비틀하는가 싶더니 주저앉았다. 트레이너의 체크가 있었고, 이내 정신을 차린 비슬리는 다시 마운드에 올라 연습구를 던졌다.
김태형 감독은 교체를 지시했다. 투수코치가 마운드로 올라오자 비슬리는 손바닥을 펼치는가 하면, 연신 손을 내저으며 '나는 괜찮으니 더 던지겠다'고 어필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바꾸지 말라'고 사정하는 듯한 모습도 있었다.
그래도 사령탑의 뜻은 바뀌지 않았다. 롯데 구단은 비슬리가 어지럼증을 호소해 교체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비슬리의 최종 기록은 2⅓이닝 5안타 3실점 5K였다. 강력한 구위가 인상적이었던 만큼, 열정도 좋지만 무리한 플레이만 자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결과적으로 두번째 투수 현도훈이 3⅓이닝을 무실점으로 잘 막았다. 승부를 뒤집진 못했지만, 롯데 입장에선 선수 보호차원이나 스코어 양쪽에서 적절한 교체였던 셈이다.
남은 건 비슬리의 건강이다. 19일 사직구장에서 만난 김태형 롯데 감독은 "비슬리가 오늘은 몸살기가 있다. 훈련은 간단히 마치고 귀가조치시켰다"고 답했다.
이어 "(덕아웃으로 달려올 때)혈압이 확 올랐을 수 있다. 나도 살다살다 블로킹했는데 공이 그렇게 튕겨나오는 건 처음 봤다"며 혀를 찼다.
김태형 감독도 이날 컨디션이 썩 좋지 않다고. 그 말을 전해들은 김경문 한화 감독은 "성적 안좋으면 원래 감독들은 여기저기 아프다"며 동병상련의 속내를 드러냈다.
부산=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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