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니에리? 정말?'
지난해 7월 레스터시티가 나이젤 피어슨을 경질하고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을 선임하자 잉글랜드의 레전드이자 축구 전문가로 활동 중인 개리 리네커가 남긴 트위터 멘션이다. 다른 레스터시티팬들이나 축구 전문가들의 반응 모두 다르지 않았다. 가까스로 잔류한 하위권 팀이라면 변화를 위해 신선한 인물을 내세운다. 라니에리 감독은 이와 정반대다. 29년 동안 5개국, 15개 클럽과 1개의 국가대표팀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그 중 첼시, 발렌시아, 유벤투스 같은 명문팀도 있었지만 그가 세운 업적을 묻는다면 딱히 떠오르는 것도 없었다. 실제로 그가 이끈 클럽이 1부 리그에서 우승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잉글랜드 언론은 전술을 강조하는 전형적인 이탈리아식 지도자에게 '실험가(TINKERMAN)'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물론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더 컸다.
'TINKERMAN TO SUPERMAN(실험가에서 슈퍼맨으로)' 7개월이 지난 후 더타임즈가 쓴 칼럼이다. 라니에리 감독의 달라진 위상을 가장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제목이었다. 레스터시티는 26라운드가 지난 지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 아래에는 아스널, 맨시티, 맨유, 리버풀, 첼시가 있다. 레스터시티의 고공행진을 이제 아무도 '돌풍'이라 하지 않는다.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운 시즌, 축구 전문가들이 꼽는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는 아스널, 맨시티도 아닌 레스터시티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노(老)감독' 라니에리가 만든 기적이다. 그의 인터뷰를 통해 레스터시티의 성공비결을 찾아봤다.
#"선수들과 얘기를 하는데 이탈리아식 접근법에 대해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았어요. 그들은 확신이 없는 것 같았아요. 그래서 선수들에게 나를 믿으라고 했어요. 그리고 전술적으로는 아주 조금만 말했죠. 그랬더니 아주 열심히 뛰더라고요. 시즌 마지막인 것처럼 말이죠."
라니에리 감독이 '실험가'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은 그가 첼시를 이끌던 2000~2004년이었다. 그는 새로운 전술과 로테이션에 집착했다. 그 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터닝 포인트는 그리스대표팀이었다. 라니에리 감독은 4경기만에 경질되는 참혹한 실패를 맛봤다. 화려한 전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수들에 맞는 옷을 입혀주는 것이었다. 훈련도 전술보다는 컨디션에 초점을 맞췄다. 빠른 스피드와 긴장감으로 가득한 잉글랜드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복이었다. 그는 하루 훈련, 하루 휴식의 일정을 짰다. 물론 훈련의 강도는 대단히 높았다. 하지만 선수들의 집중력은 대단했다. 라니에리 감독은 "천천히, 설렁설렁 뛰는 레스터시티는 레스터시티가 아니다"고 했다. 레스터시티의 엄청난 기동력은 라니에리의 달라진 전술 접근법에서 출발했다.
#"나는 항상 선수들에게 가슴 속에서 불을 찾으라고 말합니다. 이같은 기회는 다시는 없을거라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불을 찾아라!' 선수들이 자신감을 찾자 진짜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수비수 크리스티안 푸스는 말한다. "우리는 상황을 즐기고 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1위, 돌풍으로 위로 올라가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지키는 것이다. 모든 이변이 이변으로 그치는 것은 정상을 지킬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니에리 감독은 "우리는 이길 수도, 질 수도, 비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항상 같은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을 보고 싶다. 승리와 패배는 같은 면에 있기 때문이다"고 했다. 언제나 긍정적인 라니에리 감독은 열심히 하는 만큼 그 땀의 대가를 믿는다. 레스터시티 선수들도 자신을 믿기 시작했다.
리네커는 만약 레스터시티가 우승을 한다면 팬티만 입고 영국 국영방송 BBC의 EPL 하이라이트쇼 매치오브더데이를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쯤 새로운 속옷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라니에리? 정말?'이라는 트위터 멘션을 후회하면서 말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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