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 간 한국 축구의 국제 외교력은 '바닥'이었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5선에 실패하면서 '외교 암흑기'가 시작됐다. '오일머니'를 등에 업은 중동세가 새로운 아시아의 중심으로 등장했다. 동아시아에서도 다지마 고조 현 일본축구협회장이 FIFA 부회장에 선출되는 등 한국의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졌다. 지난 2월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FIFA회장 선거에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셰이크 살만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장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럽축구연맹(UEFA) 사무총장직을 던지고 선거에 뛰어든 지아니 인판티노(46·스위스)가 새로운 '세계 축구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서 '외교 암흑기'가 더 길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국제 축구계에서 개혁 성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정 회장이 '실리 외교'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정 회장이 새롭게 구성되는 FIFA 평의회 의원직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면서 '외교력 복귀'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커지고 있다.
27일 방한한 인판티노 FIFA회장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인판티노 회장은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타워에서 가진 방한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 축구의 위상이 중국, 일본, 중동에 비해 떨어진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처음 한국을 찾은 인판티노 회장은 "한국은 아시아의 축구 강국이자 FIFA의 주요 파트너사(현대기아자동차)가 소재한 매우 중요한 국가다. 꼭 한번 오고 싶었다"며 "FIFA는 한국과 매우 오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한국은 FIFA에게 매우 중요한 국가다. 때문에 한국의 지원에 매우 큰 기대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판티노 회장은 공정하고 투명한 개혁을 통해 새로운 FIFA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앞세워 회장직에 올랐다. 그러나 지난달 파나마 최대 법률회사인 모색 폰세카의 방대한 조세 회피자료가 담긴 '파나마 페이퍼'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독일 일간지 쥬트도이체자이퉁을 통해 알려졌고 인판티노 회장 역시 관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개혁 이미지에 적잖은 타격을 받은 상황. FIFA 회원국들의 지지가 절실한 상황에서 중국, 일본과 함께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한국과 등을 돌릴 수 없는 처지다. 취임 후 미국, 중국 등 FIFA 주요 파트너사 소재국을 돌고 있는 인판티노 회장은 "새로운 FIFA에 대한 비전을 설명하고 파트너사들이 FIFA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며 "한국은 FIFA와 지난 1998년부터 파트너십을 유지해 온 현대기아차가 있다. 한국 축구 역시 월드컵 등 국제 대회를 잘 수행해 온 축구 강국"이라며 한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정 회장은 "9월 말 아시아축구연맹(AFC) 총회가 있다. 기존 FIFA집행위원 외에 추가로 남자 2명, 여자 1명이 평의회 의원으로 참여하게 된다. AFC나 FIFA에 기여할 부분이 있다면 (평의회 의원) 출마를 고려할 것"이라고 의욕을 드러냈다.
인판티노 회장은 내년에 국내서 개최될 FIFA 20세 이하 월드컵 성공개최와 더불어 남북 축구 교류에 대한 생각도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는 "꿈이 현실이 될 때가 있다. 때로는 아이디어로 (목표를) 시작하기도 한다"며 남북 축구 교류에 대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자신의 공약 중 하나였던 월드컵 출전국 확대와 관련해 아시아 국가 본선 출전권 배분을 두고는 "아직 협의가 필요하지만 출전국 확대가 실현된다면 2026년 대회부터 아시아권 국가들이 최소 6장의 본선 출전권을 얻게 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인판티노 회장은 현대기아차와 FIFA 스폰서십 등을 논의한 뒤 28일 태국으로 출국할 예정이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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