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 정재훈(36)은 지난 5일 핀고정 수술을 받았다. 이틀 전(3일) LG 트윈스전에서 오른 팔에 공을 맞았고, 결국 전완부 척골 골절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는 다치기 전까지 46경기에서 1승5패2세이브 23홀드를 기록했다. 홀드 부문 압도적인 1위였다. 2010년 이후 타이틀 획득이 유력했다.
하지만 '절친' 박용택이 친 타구가 정면으로 왔다. 피할 새가 없었다. 더욱이 일이 잘못됐다고 판단한 그는 왼손으로라도 1루에 공을 던지려했다. 야구 팬들에게 적잖은 감동을 선사한 순간이다. 동시에 동료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장면이었다.
이에 따라 후배들은 부상 직후부터 정재훈의 등번호 '41'을 새기고 경기를 치르고 있다. 모자 왼쪽에 '홀드정' 혹은 '정작가'라고 큼지막하게 써놓은 선수도 있다. 물론 이는 타구단 선수들도 흔히 하는 행동이다. 롯데 선수단도 무릎 재활 중인 강민호의 등번호 '47'을 모자에 적었다. 그런데 정재훈이기 때문에 이번 행동은 좀 더 특별하다. 정재훈은 2003년 1군에 데뷔해 2014년까지 두산 유니폼만 입었는데, 하필 그가 없던 지난해 한국시리즈를 제패한 것이다. 정재훈은 2014시즌 뒤 FA 장원준의 보상 선수로 지목돼 롯데로 이적해야 했다.
친정 팀으로 돌아온 정재훈도 이 부분을 아쉬워했다. "올해 개인 타이틀에 대한 욕심은 전혀 없다. 우승의 맛을 한 번 느껴보고 싶다"고 수차례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몸 상태가 나쁘지 않다면 언제든 호출해 달라고 트레이닝 파트, 코칭스태프에 적극적으로 말했다. 투수조 후배에게는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며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그러자 후배들은 '포스트시즌에 꼭 합류해 달라'는 메시지를 담아 '41'을 새기기 시작했다. 두산 관계자는 "후배들이 먼저 행동으로 옮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선수들만이 아니다. 한용덕 수석 코치 겸 투수 코치, 강인권 배터리 코치도 뜻을 함께 했다. 결코 쉽게 접할 수 없는 장면. 강인권 코치는 "올 시즌 (정)재훈이가 얼마나 고생을 했나. 부상 당하는 순간 가슴이 무너지더라"며 "우리 코칭스태프도 빨리 돌아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잘 쉬고 재활을 잘해 앞으로 던지는데 지장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명 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41을 새긴 지도자가 있다. 바로 김태형 두산 감독이다. 김 감독은 "경기도 중요하지만 경기 외적으로 큰 형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한 정재훈이 그 이상으로, 전성기 못지 않은 기량으로 팀 마운드를 이끌자 늘 고마웠다. 또 위기 상황에서 내보낼 수밖에 없어 미안했다.
그래서일까. 김 감독 모자 창 안쪽에는 자신의 등번호 '88'과 정재훈의 '41'이 나란히 적혀 있다. 누구도 볼 수 없고, 중계 카메라에 잡히지도 않는 곳이다.
최근 김 감독에게 사진 한 장을 찍을 수 없겠냐고 부탁했다. 언제, 왜 새긴 건지 이유도 물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정중히 사진 촬영을 거절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그저 웃을 뿐이었다. 다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수장의 속마음은 헤아릴 수 있었다. 더는 이와 관련한 질문을 할 수 없었다.
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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