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삼성의 괌 전지훈련. 구자욱(23)이 대선배 이승엽(40)에게 슬쩍 다가 선다.
"선배님, 올해 제 목표가 말입니다. 타율 3할5푼입니다."(구자욱)
후배의 당찬 모습에 이승엽이 웃었다.
"에이, 3할5푼, 아무나 하는거 아니다. 안 쉬워. 너 3할5푼 치면 나는 25홈런쳐서 한일 600홈런 채운다."(이승엽)
"그럼, 내기 하시죠. 목표 이룬 사람한테 고급 지갑 사주기로."(구자욱)
"좋아, 내기도 내기지만 우리 꼭 목표 이루자."(이승엽)
2016년 둘은 약속을 '거의' 지켰다. 이승엽은 25홈런을 기록하며 대망의 한일 600홈런을 달성했다. 구자욱도 3할5푼을 넘긴 상태다.
이승엽은 19일 현재 타율 3할 25홈런 111타점을 기록중이다. 한일 600홈런 기록을 달성한 뒤 이승엽은 "더이상 기록에 대한 욕심은 없다.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해 나아갈 뿐"이라고 했다. 이승엽은 내년을 은퇴시기로 못박았다. 내년 시즌이 끝나면 프로 23시즌을 마감하게 되지만 거대한 자취를 프로야구사에 새기고 있다.
구자욱은 타율 3할6푼1리, 12홈런, 73타점을 기록중이다. 아직 13경기가 남았지만 목표로 했던 타율 3할5푼은 어렵지 않게 넘을 태세다.
올시즌 목표로 타율3할5푼을 언급한 이유는 지난해 신인왕을 차지했지만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타율 3할4푼9리, 11홈런 57타점을 올렸다. 탁월한 수치지만 한뼘 더 나아가 3할5푼은 성장하고픈 마음속 상징적 수치다. 3할타율이 넘쳐나고, 제 아무리 타고투저라고 해도 3할5푼은 차원이 다른 얘기다.
올해 구자욱은 더 성장했다. 허리 부상으로 한달 보름여를 쉬었음에도 재차 전진했다. 수비에서는 주전 1루수를 꿰찼다. 스피드와 좋은 하드웨어를 감안하면 외야수가 더 어울릴 법하지만 새로운 자리가 필요로하는 여러가지 요소를 무난히 채우고 있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뭐든 열심히 하고, 잘 배우는 것이 구자욱의 장점"이라고 말한다.
구자욱은 누구보다 이승엽을 따르는 후배다. 보고 배울 수 있는 멋진 선배가 있다는 것은 복이다. 이승엽 또한 구자욱을 특별히 아낀다. 주전중에서 막내급이라 더 애틋하다.
둘은 빛나는 2016년을 보내고 있지만 웃음을 빼앗겼다. 그라운드에서 미소짓는 모습이 눈에 띄게 줄었다. 지난 5년간 정규리그 1위,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년 연속 정규리그-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달성했던 명가 삼성이 1년만에 무너졌다. 9위, 삼성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순위다.
상실감이 큰 삼성팬, 대구팬들이 이승엽과 구자욱에 더욱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삼성의 어제와 오늘인 이승엽, 삼성의 오늘과 내일인 구자욱.
한 해를 잘 버틴 서로에게 지갑을 선물할지, 격려로 끝낼 지는 알 수 없다. 여하튼 대단한 형과 동생인 것만은 분명하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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