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내려놓고 편하게 즐기려고 했어요."
수화기 너머로 걸걸한 목소리가 들린다. 정말 이소영(22·GS칼텍스)이 맞나 싶을 정도다. 그는 "경기 중에 '파이팅'을 많이 외쳐서 목이 다 쉬었다"며 웃는다. 하지만 잠시 후 진짜 속내를 털어놓는다. "사실은 경기 끝나고 엉엉 울었어요." 부끄러운 듯 살포시 펼쳐놓은 이소영 이야기다.
지난 11월19일.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는 화성실내체육관에서 열린 IBK기업은행과의 2016~2017시즌 NH농협 V리그 여자부 2라운드 맞대결에서 22점(공격 성공률 40.54%)을 몰아치며 팀의 세트스코어 3대1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승리로 GS칼텍스는 연패를 끊어내는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이소영은 이날 후위 공격 3개, 서브에이스 3개, 블로킹 4개를 성공하며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는 기쁨을 누렸다. 2005년 V리그 출범 후 이전까지 국내선수 가운데 단 세 명(황연주 김연경 김희진)만이 성공한 대기록이다.
그는 "내가 정말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한게 맞나 싶다. 개인 기록보다는 팀이 이겨서 정말 기쁘다"며 웃었다. 이어 "그동안 우리 팀이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패한 경기가 많았다. 드디어 그 아쉬움을 털어냈다.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한층 성숙한 모습. 그 뒤에는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아픔이 있었다.
2012~2013시즌 신인왕을 거머쥐며 화려하게 데뷔한 이소영은 GS칼텍스의 10년을 책임질 미래로 주목 받았다. 그러나 주변의 지나친 기대는 어느덧 등 뒤로 쌓이는 짐이 됐다. 부담감 속에 이소영은 다소 들쭉날쭉한 모습을 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코트를 누비던 루키 시절의 열정 넘치는 플레이는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었다.
악순환의 시작이었다. 생각대로 안 풀리자 부담은 점점 커졌다. 반대로 자신감은 뚝뚝 하락했다. 급기야 2016년 리우올림픽 최종 명단에서 탈락했다. 마음이 아팠다. 아쉬움도 컸다.
이소영은 당시를 "바닥"이라고 말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를 악물었다. 이소영은 "올림픽에 가지 못한 아쉬움을 정규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걸로 달래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마음 비우기였다. 그는 "마음가짐을 달리했다. 그동안은 무조건 '잘해야지'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스스로 '나는 이것밖에 안 되나'하면서 우울해졌었다"며 "올 시즌은 다 내려놓고 편하게 즐기려고 했다"고 말했다.
멈추니 비로소 보이는 게 있었다. 평생 해온 배구였다. 욕심을 비운 자리에 들어온 배구.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소영은 올 시즌 코트 위에서 더욱 단단해졌다. 그는 "비시즌 때 훈련을 정말 열심히 했다.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하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아픔이 지나간 자리에 아름다운 꽃이 피어올랐다. 다 내려놓은 이소영, 비로소 높이 날아올랐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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