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올해 가장 강렬한 존재감, 압도적인 아우라를 자아낸 신 스틸러가 등장했다. '청룡영화상' 사상 두 번째 외국인 후보, 최초 외국인 수상자인 배우 쿠니무라 준. 그의 '청룡영화상' 상륙작전은 어떻게 이뤄졌을까.
지난 25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제37회 청룡영화상'이 열렸다. 국내의 내로라한 배우들, 감독들이 총출동한 이날 행사에서 유독 시선을 강탈한 주인공이 있었다. 바로 일본의 명배우 쿠니무라 준. 오사카 방송 극단 부설 연구소 9기생 출신인 쿠니무라 준은 1981년 영화 '가키테이고쿠'(이즈츠 카즈유키 감독)로 데뷔한 경력 35년 차의 일본 배우다. 무려 82편의 영화와 26편의 드라마를 출연하며 일본에서 '국민배우'로 손꼽히는 쿠니무라 준은 올해 5월 개봉한 '곡성'(나홍진 감독)을 통해 한국영화에 진출했고 그 결과 '청룡영화상' 레드카펫까지 밟게 됐다.
곡성의 한 마을, 낯선 외지인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의문의 연쇄 사건들과 이를 둘러싼 소문과 의심을 미스터리한 전개로 풀어낸 스릴러 '곡성'에서 쿠니무라 준은 미스터리한 외지인 역으로 출연, 마을 사람을 현혹시키는 악마로 강렬하고 섬뜩한 열연을 펼쳤다.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 오프닝부터 소름 끼치는 악마로 변신한 엔딩까지 영화 전반을 장악했다.
이렇듯 '곡성'에서 관객의 멘탈을 쥐락펴락하며 끝까지 힘을 잃지 않았던 쿠니무라 준. 그는 '부산행'(연상호 감독)의 김의성, '부산행'의 마동석, '밀정'(김지운 감독)의 엄태구, '터널'(김성훈 감독)의 오달수와 함께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고 생애 처음으로 '청룡영화상'의 레드카펫을 밟게 됐다. 하지만 쿠니무라 준을 초청하는 과정이 그리 쉽지 않았다.
쿠니무라 준에게 '청룡영화상' 초청 여부를 조율할 당시 그는 일본 TV도쿄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이시카와 고에몬'과 동시에 중국에서 오우삼 감독의 신작을 촬영 중이었다. 그야말로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가운데 '청룡영화상' 초청까지 더해진 것. 하지만 쿠니무라 준은 빠듯한 스케줄 속에서도 '청룡영화상' 참석을 위해 애를 썼다는 후문. 일본에서도 '청룡영화상'은 한국 최고의 권위와 영예를 안기는 영화상으로 알려진 만큼 쿠니무라 준은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축제를 즐기고 싶어 했고 우여곡절 끝에 영화상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 참석을 본지에 알렸다.
남우주연상 후부에 오른 것만으로도 감격했다는 쿠니무라 준. 그는 한국 관객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했고 스태프상 시상에서 한국어 인사를 전하기로 했다. 2분여의 짧은 코너였지만 이를 위해 일주일간 한국어 연습을 했다는 전언이다. "한국 영화를 좋아했고 송강호 씨를 특히 존경해 왔습니다." 정성을 쏟은 그의 한국어 메시지에 남주주연상 후보로 현장에 앉아 있던 송강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답을 했고 한국 관객과 시청자를 미소 짓게 만들었다.
쿠니무라 준의 '청룡영화상' 참석이 확정되자 일본 내 언론사들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NTV 방송을 비롯해 요미우리 신문, 아사히 신문, 교도통신 등 부랴부랴 한국행 티켓을 끊어 '청룡영화상' 취재를 시작한 것. 워낙 쟁쟁한 후보자들과 경쟁하는 만큼 수상 여부를 가늠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청룡영화상' 노미네이트는 의미가 컸기에 일본 매체들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었던 남우조연상. '부산행'의 김의성과 박빙의 경쟁을 펼친 끝에 쿠니무라 준에게 영예가 돌아갔다. 남우주연상 외에 인기스타상까지 거머쥐며 2관왕을 꿰찼다. 무엇보다 쿠니무라 준은 2011년 열린 '제32회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중국 배우 탕웨이 이후 두 번째 해외 후보자며 '청룡영화상' 사상 최초 외국인 수상자가 된 순간이다.
'청룡영화상' 현장, 특히 일본 매체 자리에선 환호성이 터졌다. 아사히 신문은 인터넷판 속보로 "한국 최고 권위의 '청룡영화상'에서 쿠니무라 준이 남우조연상과 인기스타상을 받으며 2관왕에 올랐다. 37회를 이어온 이 영화제에서 외국인이 수상한 것은 쿠니무라 준이 처음"이라며 낭보를 전했다.
쿠니무라 준 역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그는 '청룡영화상'이 끝난 직후 본지와 만나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고 그래서 더 기쁘고 감동했다. '곡성'을 찍을 당시에만 해도 연기에 확신이 없었는데 이런 영광스러운 상까지 받게 되니 앞으로 더 자신감을 갖고 연기해야 할 것 같다. 나보다 더 '악마'였던 나홍진 감독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더욱 두터워졌다. 나에게 외지인이란 캐릭터를 맡겨줘 너무 고맙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지인인 나에게 많은 사랑을 안겨준 한국 관객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수상 소감을 전하는 순간에도 일본 지인들에게 끊임없이 축하 전화를 받았던 쿠니무라 준. 연신 "감사하다"라며 말과 함께 함박웃음을 지었다.
쿠니무라 준은 '청룡영화상'이 끝난 후 곧바로 '곡성' 팀의 뒤풀이 자리에 합류했다. 자정께 시작된 '곡성' 팀의 '청룡영화상' 뒤풀이 자리에는 쿠니무라 준을 비롯해 곽도원, 천우희, 나홍진 감독이 참석했고 함께 밤새도록 '곡성'의 회포를 풀었다. 그리고 '청룡영화상' 다음날인 26일, 묵직하고 반짝이는 트로피를 두 손에 쥐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청룡영화상'이 던진 연기의 무게를 문 쿠니무라 준. 이제 한국 관객은 쿠니무라 준의 다음 행보를 기대하고 있다.
soulhn1220@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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