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날리던 눈보라가 어느 순간 딱 멈췄다. 모든 과거의 흔적이 사라진 현재. 순백의 설원은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듯 했다. 적막을 깨고 도화지 같은 깨끗한 눈밭 위로 거친 숨소리와 눈보라가 동시에 일어났다. 그렇게 한국 스노보드 역사에 이정표가 세워졌다. 동계아시안게임 스노보드 사상 첫 금메달과 은메달이 동시에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평창 기대주' 이상호(22·한국체대)가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선사했다. 19일(이하 한국시각) 일본 훗카이도의 삿포로 데이네에서 열린 2017년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남자 스노보드 대회전에서 이상호는 1, 2차 합계 1분35초76의 기록으로 전체 1위를 차지했다. 한국 스키 스노보드 사상 동계아시안게임 첫 금메달이다.
새로운 역사였지만 이상호였기에 예상했고, 기대했던 쾌거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선수생활을 시작한 이상호는 국제스키연맹(FIS) 세계주니어선수권, 유로파컵 등에서 정상에 오르며 잠재력을 발휘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이탈리아 카레차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 평행대회전에서 4위에 오르며 한국 선수 설상 종목 사상 월드컵 최고 성적을 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치른 테스트 이벤트에서 다소 주춤했지만, 그는 여전히 이번 대회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이상호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1차 시기에서 1위(51초94)를 차지하며 쾌조의 스타트를 끊은 그는 2차 시기에서 2위(43초82)에 머물렀다. 하지만 대세에는 지장이 없었다.
겹경사가 있었다. 최보군(26·상무)이 2위를 차지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스노보드 역사상 동계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동시에 획득한 적은 없었다.
더욱 고무적인 사실은 금, 은메달 외에도 선수들이 고른 활약으로 희망을 밝혔다는 점이다. 이날 출전한 지명곤(35) 김상겸(28·이상 전남스키협회) 역시 각각 4, 5위에 랭크되며 5위 권안에 한국 선수 4명이 이름을 올렸다. 향후 대표팀 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선수들이 흘린 땀과 눈물 속에 한국 스키 스노보드의 새 역사가 씌여진 날. 원인 없는 결과는 없었다. 그 뒤에는 든든한 후원의 힘이 있었다. 대한스키협회 회장사인 롯데그룹은 5년 동안 100억원 투자를 약속했다. 과거 코치 1명이 선수 5~6명을 가르치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5명의 코치가 팀으로 움직이며 선수들의 훈련을 체계적으로 돕고 있다.
외국인 코치도 적극적으로 영입했다. 스노보드는 벤 보이드(호주), 이반 도브릴라(크로아티아) 등이 합류해 선수들이 경기력을 끌어올리는데 힘을 보탰다. 기술 뿐 아니라 심리 전담 코치가 자칫 슬럼프에 빠질 수 있는 선수들의 멘탈 강화를 위해 함께 뛰고 있다.
금메달을 목에 건 이상호 역시 "새 회장님이 취임한 뒤 스노보드에 대한 지원이 엄청 많아졌다"며 투자의 힘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인 코치님은 대표팀 선수들의 성격 등에 대해 세세히 잘 알기 때문에 컨트롤을 잘 해주신다. 반면 외국인 코치는 경험이나 기술에서 큰 힘을 준다"고 덧붙였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일깨운 스노보드의 쾌거. 지속적 투자와 관심 속에 대한민국 스노보드는 1년 앞으로 다가온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메달이란 새 역사를 정조준하고 있다.
삿포로(일본)=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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