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숫자일 뿐이었다.
시리아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95위다. 결과는 0대1 패배였지만 FIFA랭킹이 45계단이나 차이가 나는 한국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초 시리아는 객관적 전력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극단적인 밀집수비를 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승점이 확보된 상황에선 시간을 끌기 위한 중동 특유의 침대축구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정반대였다. 정상적인 경기 운영을 펼쳤다. 시리아의 기본 전략은 '맞불'이었다.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개되는 빌드업에선 다소 흔들림이 있었다. 그러나 미드필드부터 최전방 공격을 전개하는 과정은 오히려 한국보다 간결하고 위협적인 경우가 많았다. 우측 측면 공격수 알마와스가 한국의 왼쪽 측면을 자주 공략하면서 스트라이커 카르빈과 찬스를 만들었다. 전반 30분에는 문전에서 알쉬블리에게 결정적인 슈팅을 허용하기도 했다.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간 슈팅이 크로스바를 살짝 넘어갔지만 골이나 다름없었다. 전반 유효슈팅도 한국이 3개인데 비해 시리아는 2개나 됐다.
기세는 후반에 더 거셌다. 전술은 단순했지만 강한 압박과 투지로 더 가열차게 한국을 몰아쳤다. 후반 추가시간에는 알카팁이 크로스바를 때리는 슈팅으로 다시 한 번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시리아는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7경기만에 처음으로 공격적으로 나섰다. 시리아가 원정임에도 수비축구를 택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너무 이른 시점에 실점을 허용했다. 시리아는 채 전열이 가다듬어지지 않은 전반 4분 만에 골을 내줬다. 필드 골도 아닌 세트피스 득점이었다. 시리아가 추격할 수 있는 시간은 86분이나 남아있었다.
무엇보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향상이 가장 큰 무기였다. 시리아는 안방에서 열린 1차전에서 극단적인 수비 전략을 펴 0대0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특히 앞선 5, 6차전에서 얻은 자신감이 컸다. 시리아는 조 선두 이란과 0대0으로 비겼고 홈에서 우즈베키스탄을 1대0으로 꺾고 승점 3점을 보탰다. 이날 결전을 앞두고 조 2위 한국(승점 10)과의 승점차는 불과 2점에 불과했다. 월드컵 본선에 직행할 수 있는 마지노선인 2위까지는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본선행을 노릴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 자신감이 오롯이 그라운드에서 발산된 것이다.
지난 6년간 내전의 상처를 축구로 치유하고 있는 시리아의 월드컵 본선행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상암=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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