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민구단의 운명은 선거철마다 춤을 춘다.
구단 임직원들은 속칭 '순장조'로 불린다. 구단주인 지자체장의 거취에 따라 운명이 뒤바뀌기 때문이다. 시즌 중 구단 프런트, 감독-코칭스태프가 물갈이되고 성적은 추락하는 악순환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 축구의 구태다.
K리그 챌린지(2부리그) 대전 시티즌에서 '구태'가 반복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윤정섭 대전 사장이 30일 갑작스럽게 사표를 제출했다. 윤 사장은 이날 구단직원들과 고별인사를 한 뒤 권선택 대전시장에서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시 주무부처 측은 "처음 듣는 이야기", "알지 못하는일"이라고 놀라움을 드러냈다.
축구계에선 대전시의 정치격랑이 구단까지 파고 든 것으로 보고 있다. 구단주인 권 시장은 최근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아 왔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대전고법 제7형사부에서는 파기환송심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권 시장의 유죄를 인정,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형이 확정되면 권 시장은 정지차금법에 따라 공무담임이 제한돼 시장직을 잃게 된다. 전문경영인 출신인 윤 사장은 권 시장과 오랜기간 친분을 유지한 인사로 지방선거 당시 직간접적으로 당선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진 인사다.
축구계에선 "권 시장의 형 확정 이전에 구단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인사의 압력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올 초부터 축구계 유력 인사를 앞세운 인물이 새 사장으로 선임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권 시장의 시장직 상실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행동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윤 사장은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칩거에 들어간 상황이다.
선수단도 동요하는 눈치다. 대전은 올 시즌 이영익 감독 뿐만 아니라 김진규 크리스찬 이호석 강승조 등 알짜배기 선수들을 영입해 승격을 정조준 중이다. 챌린지(2부리그) 4경기를 치른 현재 1승1무2패를 달리고 있다. 간신히 본궤도에 오르는 시점에서 어수선해진 구단 분위기는 불안감을 증폭시킬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새 사장 선임 시 이 감독이 자리를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대전 팬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2000년대 초중반 '축구특별시'로 불릴 정도로 인기몰이를 했던 대전은 구단주인 시장이 바뀔 때마다 '물갈이'가 계속되면서 연속성을 잃고 표류했다. 최근 들어 간신히 안정을 찾아가는 듯 했으나 윤 사장 사퇴로 또 논란이 불거지자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다. 대전은 1997년 창단 이래 윤 사장까지 20년 간 총 16명의 사장이 거쳐갔으나 임기가 지켜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윤 사장의 사표가 반려될 가능성은 존재한다. 임기가 내년 8월까지인데다 그동안 큰 무리 없이 구단을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표 수리 또는 반려를 떠나 '정치 논리 개입' 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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