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열흘 동안 "감독을 경질하라"는 축구팬들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3일 대한축구협회가 기술위원회를 통해 내린 결정은 '슈틸리케 유임'이었다.
축구협회 안팎에서 "바꿔야 한다"고 외쳤지만 고민한 축구협회 수뇌부는 '포스트 슈틸리케'에 대한 확실한 대안을 마련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슈틸리케 감독과 한국축구 A대표팀은 남은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3경기를 매 경기 '단두대 매치' 처럼 치를 상황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또 한번의 고비를 넘기면서 '생명' 연장을 했지만 앞으로 남은 3경기 결과와 경기 내용에 따라 다시 거취 문제가 불거질 수 있는 상황이다. 슈틸리케 감독과 A대표팀은 앞으로도 살얼음판을 걸을 처지다.
결과적으로 축구협회는 외부의 경질 목소리에 반하는 유임으로 결론내리면서 내부 결속을 다졌다. 슈틸리케 감독과 이용수 기술위원장에게 다시 힘을 실어준 셈이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이용수 위원장의 사표를 반려했다.<스포츠조선 4월 3일자 단독 보도> 그리고 이용수 위원장은 기술위원회에서 유임 결정을 도출해냈다.
앞서 다수가 "슈틸리케 감독으로는 더이상 안 된다"고 비난을 가했을 때 그 목소리에 찬물을 끼얹은 쪽은 선수였다. 바로 슈틸리케호의 주장 기성용(스완지시티)이었다. 기성용은 슈틸리케 감독의 '페르소나(분신)'라고 불리는 핵심 선수다. 그는 지난달 28일 시리아전(1대0 승)에서 어렵게 승리한 후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발언의 골자는 "감독님은 열심히 준비했고, 전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이 잘 못한 것이다." 또 지금 상황에선 어떤 감독이 와도 어렵다는 얘기도 했다. 이 발언에 같은 유럽파이자 태극호의 핵심 선수인 손흥민(토트넘)과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등이 공감했다.
결과적으로 핵심 선수들의 '자아비판' 식 발언은 위기의 슈틸리케 감독을 보호한 방패막이 돼 버렸다. 프로팀 감독까지 지낸 한 축구인은 "이번 유임 결정이 향후 어떤 식으로 한국축구사에 남을 지 모르지만 선수들의 발언이 축구협회 수뇌부 판단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이 자신들의 잘못이라고 했기 때문에 결정권자가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또 하나 주목할 대목은 정몽규 회장의 결단이다. 이용수 위원장은 시리아전 후 깊은 고민 끝에 사의를 정 회장에게 밝혔다.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 여론이 들끓자 이용수 위원장은 책임을 지고 물러나려고 했다. 이용수 위원장은 2014년 슈틸리케 감독을 뽑아온 실무 책임자였다. 그는 지난달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슈틸리케 감독과 계약 과정에서 나눈 대화를 소개했다. "감독을 경질할 경우가 생기면 감독에 앞서 내가 먼저 물러날 것이다."
그런데 정몽규 회장이 이용수 위원장의 사표를 반려하면서 사실상 슈틸리케 감독의 유임 쪽으로 기울었다. 정 회장은 지난달 중국전 패배 후 언론 인터뷰에서 슈틸리케 감독의 거취를 논할 때가 아니라는 발언을 했다. 그 의지는 시리아전 승리 후에도 바뀌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현대산업개발 회장이기도 하다. 기업가다. 실리를 최우선으로 따진다. 슈틸리케 감독과 이용수 위원장을 지금 시점에서 버렸을 경우 한국 축구와 축구협회가 더 큰 혼란을 맞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1차적으로 이용수 위원장의 사표를 수용하지 않았다. 더 큰 책임감을 갖고 지금의 위기 상황을 극복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또 현재 아시아 최종예선 A조 2위로 본선 직행 가능성의 긍정적인 면을 봤다. 중국전과 시리아전에서 A대표팀이 축구팬들의 바람에 미치지 못했지만 6월 카타르전부터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슈틸리케 감독의 거취 논란은 일단 일단락,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남은 3경기 결과와 내용에 따라 언제라도 불거질 수 있는 사안이라고 보는 게 맞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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