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계에는 '스타는 위기에서 빛난다'라는 속설이 있다. 수원 삼성에는 이 뻔한 속설이 필요했다.
19일 인천축구전용구장에서 벌어진 인천-수원의 FA컵 32강전. 후반 11분 아크 서클에서 수원의 캡틴 염기훈의 왼발이 번뜩였다. 상대 선수들이 쌓은 벽 위로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공은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인천 골키퍼 정 산이 전혀 반응 할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운 프리킥이었다.
최근 염기훈은 그 누구보다 힘든 시간을 보냈다. 조 1위를 달리고 있는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와 달리 K리그에선 6경기(5무1패)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수원 팬들은 오물까지 투척하며 선수단을 비난했다. 그러나 찬찬히 뜯어보면 수원은 올 시즌 ACL과 K리그에서 단 1패밖에 하지 않았다. 단지 K리그에서 승리가 없을 뿐이었다. 마치 최근 부진한 경기력으로 팬들의 거센 비난에 시달린 슈틸리케호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특히 선수들이 "세오 아웃"을 외치며 서정원 수원 감독을 비난하는 팬들에게 "경기는 우리가 한다. 우리가 잘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부진한 경기력을 자신들의 탓으로 돌린 것도 비슷하다.
무엇보다 염기훈은 이 승리가 없는 상황이 자신 때문이라는 자책에 빠져있었다. 스리백과 투톱 전술에서 익숙한 왼쪽 윙어가 아닌 스트라이커로 보직을 바꾼 뒤 적응에 애를 먹고 있었다. K리그에선 공격포인트가 전무했다. 장기인 도움도 기록하지 못했다.
하지만 스타는 스타였다. 22일 강원 원정을 위해 주전 선수들이 휴식을 취한 상황에서 스타는 염기훈 뿐이었다. 주장으로서 이종성 이상민 김종민 등 젊은 선수들을 이끌고 승리를 챙겨야 했다. 어깨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염기훈은 한 발 더 뛰는 전략으로 동료들의 투지를 불러일으켰다. 최전방 공격도 충실했지만 더 돋보인 건 활발한 수비가담이었다. '희생'은 이런 것이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줬다.
냄비처럼 들끓던 수원 팬들은 경기가 끝나자 '염기훈'을 연호했다. "'수원의 사나이' 염기훈은 수원을 위해 왼발을 쓸거야. 염기훈은 '왼발의 지배자'." 염기훈의 왼발로 수원의 성난 팬심도 잦아들었다.
인천=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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