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과정을 하나씩 살펴보자.
지난 4월 25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수원 삼성-가와사키전, 경기에 앞서 일본 가와사키 서포터스가 '욱일기'를 내걸었다. 욱일기는 제국주의 일본군이 사용했던 '전범기'다.
당시 수원 삼성 구단은 아시아축구연맹(AFC) 경기 감독관에게 이 상황을 보고했다. 바로 압수했다.
AFC는 지난 4일 홈페이지를 통해 가와사키 구단에 벌금(1만5000달러) 징계를 내렸다. 또 1년 내 같은 사안이 재발할 경우 AFC 주관 1경기를 무관중으로 치르도록 했다.
AFC가 밝힌 징계 근거는 규정 58조와 65조 위반이었다. AFC는 인종 정치 등 차별적인 행동과 언행을 통해 상대에게 모욕을 주는 행위(58조)와 경기장 내 정치적 슬로건, 모욕적인 응원(65조)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반응과 대응은 달랐다. 4월 30일, 다시마 고조 일본 축구협회장이 나섰다. 그는 "욱일기에 정치적인 의도가 없다고 생각한다. AFC와 FIFA에 줄곧 말하고 있다. 문부과학성, 스포츠청, 외무성과 함께 제대로 이야기하겠다"고 말했다. 그 다음은 스가 요시히데 관장방관까지 가세했다. 지난 8일 정례 브리핑에서 "욱일기는 일본 국내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자위대기와 자위관기 뿐 아니라 대어기, 출산, 명절의 축하 깃발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축구협회와 정부가 방패막을 해주자 이번엔 가와사키 구단이 나섰다. 지난 12일 가와사키 구단이 AFC에 항의성 질문서를 보냈다.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가와사키 구단은 "욱일기에는 정치적, 차별적인 의도는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 관중에게 욱일기 응원을 하지말 것을 당부했다.
사건 발생 이후 3주 정도가 흘렀다. 사고를 친 일본은 구단, 축구협회, 정부가 나서 일사분란하게 같은 목소리로 잘못을 방어했다. '벌'을 준 AFC를 상대로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안방에서 사건을 지켜본 우리는 일부지만 도발적인 행동을 한 일본에 대해 반응을 자제해왔다. 구단, 축구협회, 정부 어느 쪽도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물밑으로 움직였을 수는 있지만 겉으로 드러난 건 없었다.
우리 국민들은 일제 치하의 굴욕적인 지배를 잊지 못한다. 한국과 일본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우호적인 동반자 관계를 맺자며 악수를 나눴다. 최근 일본의 아베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우경화의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스포츠에 정치를 결부시키지 말자'는 건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우리는 박종우가 2012년 런던올림픽 축구에서 '독도 세리머니'로 징계를 받았던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박종우 사건과 이번 욱일기 사건이 100% 같은 맥락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축구장에선 어떤 형태로든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는 표현은 하지 말라는 게 국제적인 규율이다.
일본은 잊을만하면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적 기억을 되살려준다. 상대가 도발을 해왔을 때 우리가 가만 있으면 얻는게 뭘까. 감정적으로 대응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AFC와 FIFA를 믿고 가만 있는게 최선책은 아닐 것이다. 당당하게 할 말을 해야 그들도 최소한 눈치를 본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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