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떨어질 데가 없는데 어디로 가겠는가.'
프로야구에서 최하위팀들이 위안으로 삼는 말이다. '명가' 삼성 라이온즈는 지난해에 이어 올시즌에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구광역시 외곽, 공기좋은 곳의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라는 아름다운 야구장을 들여놓고 2시즌 연속 바닥을 헤매고 있으니 팬들의 심정은 오죽하겠는가.
그래도 희망은 있다. 삼성이 반등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전력의 기본은 투타 밸런스. 외국인 투수 앤서니 레나도가 합류했고, 타선에서는 득점 루트를 다양하게 조합할 수 있는 타자들이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그 타선의 중심에는 외국인 타자 다린 러프가 있다.
지난 2월 일본 오키나와에서 만난 러프는 덩치(키 1m92)와 비슷하게 조용한 말투와 겸손한 행동거지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올시즌을 마치고 은퇴하는 이승엽을 아는가"라는 질문에 "이곳에 와서 친해지고 있다. 서로 도움이 될 것이다"며 자존심을 세웠던 러프는 시즌이 시작된 뒤 김한수 감독의 속을 무던히도 태웠다.
시즌 개막후 4월까지 한 달간 그는 타율 1할5푼, 2홈런, 5타점에 그쳤다. 삼성은 4월까지 26경기에서 4승20패2무를 기록했다. 창단 36년간 이처럼 수모를 당한 적이 없다. 하지만 5월 들어 반등세가 시작됐다. 삼성은 5월 한 달간 11승14패를 기록했다. 일취월장이 맞는 표현이다. 투타 밸런스는 여전히 불안하지만, 함부로 대할 수만은 없는 팀임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러프가 4번타자로서 타선의 중심을 잡아준 덕분이다. 러프는 5월 한 달간 타율 3할3푼(94타수 31안타), 7홈런, 23타점을 올리며 진가를 발휘했다. 5월의 시작과 끝이 러프의 방망이로 장식됐다. 5월 2일 두산 베어스와의 홈경기에서 연장 10회말 이현승을 상대로 끝내기 좌월홈런을 터뜨렸고, 5월 31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게임에서는 결승타를 포함해 5타점을 쏟아내며 주목을 받았다.
마침내 KBO리그에 적응한 모습이다. 지난 5월 20일부터 따지면 10경기에서 타율 3할6푼8리(38타수 14안타), 4홈런, 16타점을 뽑아냈다. 4번타자라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 유인구 대처능력은 아직 만족스럽지 않지만, 실투를 놓치지 않는 노련함은 4월과는 다르다. 이날 롯데전에서도 러프는 7회말 1사 2루서 좌완 이명우의 140㎞ 한복판 직구를 통타해 좌중간 담장을 훌쩍 넘어가는 아치를 그리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시즌 초 퇴출이 거론되기도 했던 러프에 대해 삼성 구단은 만족감을 나타내고 있다. 부상만 없다면 중심타자로서 손색없는 활약을 펼칠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다.
대구=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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