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힘들게 쌓아놓았던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이다."
조성환 제주 감독은 고개를 숙였다. 제주는 지금 상실감과 싸우고 있다. 제주는 올 시즌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FA컵, 리그, 3개 대회 우승을 목표로 싸웠다. 물론 3개 대회를 모두 차지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최소 한개 이상의 트로피를 차지하기 위해 매 순간 전력을 다하겠다는 뜻이었다.
시작은 좋았다. 제주는 K리그에서 유일하게 ACL 16강에 진출했고, 리그에서는 1, 2위를 달렸다. 가장 큰 걸림돌인 전북과 서울이 탈락한 FA컵도 가시권에 있었다. 성공적인 선수 영입에 화려한 공격축구까지. 제주의 행보에 찬사가 쏟아졌다. 그야말로 장미빛 질주였다.
화려했던 제주의 총천연색 꽃길이 단 열흘 만에 무채색 흙길로 바뀌었다. 다 잡은 듯 보였던 ACL 8강행은 좌절됐고, FA컵도 8강 문턱에서 탈락했다. 설상가상으로 아시아축구연맹(AFC)의 징계까지 받았다. '핵심 수비수' 조용형은 6개월, 로테이션 수비수 백동규는 3개월 자격정지를 받았다. 수비진이 완전히 무너지며 남은 시즌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래서 18일 강원과의 경기가 중요했다. 악몽의 열흘 이후 처음으로 나서는 경기였다. 조 감독은 "강원을 잡으면 분위기를 반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걸었다. 조 감독은 이날 포백을 택했다. 중징계로 중앙 수비진이 붕괴된 탓도 있지만, 상대에게 스리백이 읽히고 있는만큼 변화를 위한 시점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포백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았다. 오반석이 고군분투했지만 상대에게 뒷공간을 여러차례 내줬고, 좌우 윙백도 스리백 당시 보다는 공격적인 부분에서 미흡했다. 결국 제주는 1대2로 무릎을 꿇으며 3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하지만 제주의 이날 패배는 포백 때문이 아니었다. 심리적인 부분에 압도 당한 경기였다.
모순이었다. 몸을 날렸지만 투지가 부족했다. 열심히 뛰었지만 집중력이 부족했다. 승리를 원했지만 부담감에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경기 내내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이런 정신으로는 상대를 제압할 수 없다. 조 감독도 이를 지적했다. 그는 "승리에 대한 부담감이 있다. 우리 스스로 위축되지 않았나 싶다. 더 강해져야 한다"고 했다.
지금 제주가 바꿔야 하는 것은 전술도, 전략도 아니다. 급할 수록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 많은 생각은 금물이다. 제주의 반등에 필요한 것은 오직 승리를 향한 강한 의지 뿐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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