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는 니코틴, 타르 등 발암인자 및 독성물질이 들어있어 폐와 관련된 암 또는 기관지계 질환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담배가 일으킬 수 있는 질병 중에는 일상 속에서 쉽게 간과할 수 있는 의외의 질환도 있다.
국민 100명 중 2명에서 3명이 경험한다는 '탈장'도 그 중 하나다. 사실 탈장과 흡연의 상관관계는 의학계에서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보고되고 있다. 그렇다면 주변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탈장이 어떻게 흡연과 연관이 있을까.
탈장은 복강 내에 있는 장기가 제자리에서 벗어난 상태로, 내장을 받쳐주는 근육층인 복벽이 약해지면서 생긴 구멍을 통해 장이 복벽 밖으로 밀려나온 현상을 말한다. 탈장의 원인은 크게 복압의 증가, 복벽 조직의 약화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그런데 흡연은 이 두 가지 종류의 탈장을 모두 유발할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먼저 흡연 시 유발되는 기관지염으로 인한 만성기침은 복압을 상승시켜 탈장을 유발한다. 지속적인 기침이 복압을 끊임없이 상승시키면 약해진 복벽 중 주로 사타구니 주변이 돌출되는 '서혜부 탈장'을 유발한다.
서혜부 탈장은 전체 탈장의 75% 정도를 차지하는데 남성의 경우 어렸을 때 복부에서 사타구니로 고환이 내려온 흔적 때문에 일종의 '터널'이 생성돼 여성보다 더 쉽게 서혜부 탈장이 일어날 수 있다.
두 번째로 흡연을 하게 되면 마이오스타틴(myostatin)이라는 물질의 생성이 증가된다. 이 물질은 근육에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는 작은 혈관들을 파괴하고 종합적으로 복벽의 조직을 약화시켜 탈장을 일으킨다.
탈장이 생기면 서서 배에 힘을 줄 때 사타구니나 배꼽 부위가 불룩하게 튀어나오게 된다. 초기에는 눕거나 해당 부위를 누르면 다시 뱃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 탈장으로 의심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증상을 방치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튀어나오는 부위의 크기가 더 커지고 남자의 경우 음낭까지 내려오기도 하며 일상생활에 불편함과 때로는 통증을 느낄 수 있다.
이 밖에도 기침을 할 때 배 안에서 압력이 느껴지는 경우도 탈장일 가능성이 있다.
탈장이 의심되는 증상들이 있다면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을 통해 진단을 받아야 한다. 만일 증상을 그대로 방치하면 장의 혈액순환에 장애가 생겨 장에 괴사가 일어나게 돼 발열, 변비, 중증 통증, 심하면 쇼크까지 유발할 수 있다. 이러한 상태는 '고액성 탈장'으로 발견 즉시 응급수술을 해야 한다.
탈장은 구조적인 결함이기 때문에 자연 치유되거나 약물만을 통한 치료가 불가능해 수술만이 유일한 치료법이다. 탈장의 합병증을 막고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수술을 통해 약해진 복벽의 틈을 보강하거나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탈장 수술은 위급하거나 복잡한 수술이 아니기 때문에 대형병원이 아니라도 복강경시술 전문 인력을 보유한 소화기센터나 외과가 개설된 전문병원에서도 가능하다.
최근에는 수술 방법의 발전과 다양화로 환자 개개인의 특성이나 몸 상태, 생활방식에 따라 전문의와의 상담 후 적합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전신마취를 한 후 인공막을 이용한 복강경 수술법도 있지만 전신마취가 용이하지 않은 경우 국소마취 후 작은 절개창으로 인공막 등을 이용해 수술하기도 한다.
탈장 수술을 받고 퇴원하면 바로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수술 후 근육이 완전히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탈장 재발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나이와 키에 적합한 체중을 유지하고 걷기나 요가, 스트레칭과 같은 규칙적이고 가벼운 운동을 통해 복근을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
오래 서 있거나 무거운 물건을 드는 행동은 순간적으로 복압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 만약 꼭 들어야 한다면 팔과 다리 근육을 이용해 복부에 힘이 덜 가도록 하는 것이 좋다.
복벽을 약하게 만드는 흡연은 탈장 환자의 수술 후 재발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탈장 수술 경력이 있는 흡연자라면 재발을 막기 위해 금연하는 것이 좋다. 비만과 전립선 비대증, 당뇨 등의 위험인자에 노출된 사람이라면 더더욱 금연이 필수적이다.
민상진 메디힐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