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클래식에 보기 드문 '물건'이 튀어나왔다.
주인공은 정승원(20·대구)이다. 이름이 생소하다. 그는 2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과의 2017년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15라운드를 통해 프로 첫 선발 출전의 꿈을 이뤘다.
알려지지 않은 약관의 공격수. 2016년 대구에 입단했지만 1년이 훌쩍 지나서 첫 선발로 출전한 무명의 유망주. 보는 이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정승원이 누구야?"
강렬한 '자기소개'를 했다. 녹색 그라운드를 자유롭게 휘저었다. 프로 첫 선발 경기를 치르는 선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부담을 즐기는 듯했다. '대박'의 기운이 느껴졌다.
대담했다. 상대와 1대1 상황을 피하지 않았다. 기술이 뛰어났다. 서울 소속 '대선배'들의 가랑이 사이로 공을 뺐다. 주세종과 오스마르가 당했다. 1m70-68kg작은 체구, 하지만 서울을 위협하기엔 충분했다. 빠른 스피드로 뒷 공간을 노렸고 유효슈팅도 기록했다.
정승원은 후반 48분 교체되기 전까지 제 몫을 다 했다. 아니 기대 이상이었다. 정승원은 "프로 첫 선발 출전을 해 뜻 깊었다"며 "안드레 감독님이 공간 침투를 강조했고, 코치 선생님들도 자신감 있게 하라고 해주셨다"고 했다. 이어 "솔직히 긴장도 조금 됐는데 형들이 편하게 부담갖지 말고 하라고 해주셔서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정승원은 탁월한 드리블러다. 마음만 먹으면 수비수 1~2명은 제친다. 골 감각도 좋다. 그는 지난해 R리그 득점 2위에 올랐다. 15경기에서 7골-3도움을 기록했다.
'유망주 발굴의 장인'조광래 사장이 일찌감치 정승원의 잠재력을 봤다. 2015년 대구 입단 테스트 때다. 당시 안동고 3학년이던 정승원은 자신에게 온 공의 밑부분을 찍어 수비수 키를 넘기는 개인기를 펼쳤다. 한국 축구판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당돌함과 기술. 조 사장은 정승원을 점찍었다.
이렇게 보면 무탈히 커온 선수 같다. 하지만 티 없이 맑은 '꽃미남' 외모 뒤엔 숱한 고비가 있었다. 축구를 그만 둘 뻔했다. 고2 때다. 여름 전국대회를 앞둔 시점. 오른무릎 4분의 1가량이 무혈성 괴사(혈액이 통하지 않아 세포·조직이 죽는 상태) 진행중이었다. 의사의 말은 충격이었다. "더 늦으면 축구를 할 수 없다". 정승원은 "정말 많이 울었다. 두렵고 겁이 났다. 축구만 알고 살았고 앞으로도 더 해서 부모님 호강시켜드리고 싶었는데 못 하게 될 수도 있다고 하니 정말 하늘이 원망스러웠다"고 회상했다.
이 악 물고 수술대에 올랐다. 정승원은 "최건욱 안동고 감독님이 아니었으면 축구를 접었을 수도 있다"며 "대회, 경기 이런 거 신경쓰지 말고 수술, 회복에만 집중해서 오래오래 공 찰 생각만 하라고 말씀해주셨다"고 했다.
무릎을 들어내고 15개의 구멍을 뚫는 대수술, 정승원은 1년 유급했다. 한데 "더 열심히 해서 1년 공백 채우자"는 다짐은 이내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또 부상. 조 사장의 눈을 사로잡아 대구 입단이 확정됐던 2015년 여름. 이번엔 오른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그러나 이번엔 울지 않았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회복 후 정승원은 2016년 대구의 중국 전지훈련에 합류했다. 연습 경기에도 나섰다. 정승원은 "조광래 사장님께서 한 번 해보겠냐고 물으셔서 뛰고 싶다고 했다. 기회를 주셨기에 최선을 다했고 비록 연습경기지만 골도 넣어서 정말 뿌듯했다"며 웃었다.
그는 비록 2016년 대구 1군 경기에 단 한 번도 나서지 못했지만 씩씩하게 털어냈다. "R리그에서 열심히 했다. 그리고 형들은 승격을 일구셨다. 그것을 지켜본 것 또한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묵묵히 버틴 정승원은 한 뼘 더 성장했다. 2017년 들어 두 차례 교체 투입 후 서울전을 통해 선발 기회를 잡았다. 자신만의 색깔도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 동안 K리그에서 보기 힘들었던 '꽃미남 드리블러.' 정승원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선수다. 그의 발끝에 대구의 '내일'이 달려있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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