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감독(47)은 현역 시절 '국내용'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월드컵 무대를 한 번도 밟아보지 못했다. '한'이 있었다. 그러나 지도자로서는 꿈을 이뤘다. 연령별 최상위인 A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전권도 쥐었다. 이제 A대표팀 코칭스태프 선임과 선수 선발에 관한 모든 권한은 신 감독에게 있다.
다만 숨겨진 조건이 있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와의 적극 소통이다. 신 감독과 최일선에서 소통할 대상은 김호곤 기술위원장(66)이다. 이미 김 위원장과 신 감독은 5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과 만난 뒤 가볍게 술잔을 부딪히며 소통을 약속했다.
전술과 전략을 짜는 건 신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의 몫이다. 그러나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한다. 충분히 그럴 만한 상황이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남은 두 경기에 한국 축구의 운명이 달려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시점이다. 자신의 신념과 스타일은 살리면서도 적절하게 주위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열린 마인드가 필요하다.
기술위는 신 감독의 그림자가 될 전망이다. 김 위원장은 신 감독이 펼칠 축구에 깊숙이 개입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고 했다. 다만 상황에 맞는 조언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위원장은 "딱딱한 분위기보다 경기가 끝난 뒤 맥주 한 잔 마시면서 기술위원들이 분석한 내용을 경청할 것이다. 그 내용들과 내 의견을 취합해 신 감독에게 전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동안 A대표팀에 대한 기술위의 역할은 한정적이었다. 사령탑만 뽑아놓고 감독에게 모든 걸 맡겼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기술적인 조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파트에서 전혀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김 위원장은 그 동안 이뤄지지 않은 감독-기술위의 소통을 활용, 한국 축구의 위기 탈출의 해법으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신 감독의 마음도 열려 있다. 8일 A대표팀 감독이 된 뒤 처음으로 K리그 현장을 찾은 신 감독은 "이기는 축구를 향한 방법 역시 특정한 길이 있는 게 아니다. 상대가 어떤 전술을 들고 나오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 두 경기만을 생각하고 있다. 이란은 카운터 어택을 강하게 하는 팀이다. 잘 준비해서 좋은 결과 낼 수 있도록 하겠다"며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신 감독은 지난 6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조기소집에 대해 다소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당시 신 감독은 "소집은 내 임의대로 만들 수 없다. 개의치 않는다.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은 시간을 빼낼 수는 없다. 짧은 시간 안에 우리 축구를 할 수 있게 선수들에게 강하게 주입시키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지 않나"고 반문했다.
하지만 상황은 물불 가릴 때가 아니다. 무리스럽더라도 필요하면 욕심을 내야 한다. 자신이 활용하고 얻을 수 있는 카드를 모두 확보해야 한다. 조기소집 카드도 그 중 하나다. 스스로도 "대표팀 감독 자리는 시간 여유가 많으면 많을수록 자기 전술을 더 잘 녹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강희 전북 감독과 김도훈 울산 감독 역시 "필요하다면 일정 연기 등에 대해선 당연히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신 감독이 김 위원장에게 서슴없이 '조기소집'을 요청하고 빠르게 일정을 조율할 필요도 있어보인다.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는 신태용이 아닌 한국 축구의 몰락이다. 한국땅에서 공을 차는 누구라도 예외는 없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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