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제가 한 게 없어요. 숟가락만 얹은거죠."
배기종(34·경남)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다. 2006년 대전을 통해 프로 생활을 시작한 그는 11년차 노장이다. "앞만 보고 달렸는데 시간이 훌쩍 지났다."
다재다능한 측면 공격수. 데뷔 시즌서 7골-3도움을 올린 그는 이듬해 '명가' 수원 유니폼을 입는다. 이후 수원, 제주 등 기업 구단에서만 뛰었다.
뛰어난 선수임은 분명하지만 무언가 2%가 부족했다. '주전급'이 아니었다. "2010~2011년 제주 시절을 제외하면 내가 주전으로 뛴 적은 없었다. 프로엔 워낙 뛰어난 선수들이 많지 않은가."
당당히 주전으로 뛰고 싶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그래도 배기종은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냈다. 타고난 성격이 워낙 순하다. "감독님의 지시를 수행하는 게 내 임무다."
조용하고 무난하기만 한 그는 10년 넘게 프로 무대를 누비면서 주장을 해 본적이 없다. "내가 뭐 주전으로 출전이 많은 선수도 아니었고, 성격적으로도 확 휘어잡거나 쓴소리를 못한다. 그런 내게 어떻게 주장을 맡기겠나."
그의 축구 인생은 무난히 그리고 조용히 황혼기로 접어들었다. 출전 시간도 확 줄었다. 2015년 제주에서는 9경기 출전에 불과했다. "이렇게 잊혀지나 싶었다."
클래식에선 더 이상 자리가 없었다. 그렇게 그는 밀리듯 2016년 K리그 챌린지(2부 리그) 경남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경남은 '폐허'였다. 전임 대표들의 만행으로 만신창이가 된 팀. 그의 앞 날도 잿빛이었다. "솔직히 자포자기 심정도 있었다. 잘 될 것이란 희망도 없었고, 나 역시 자신 없었다. 이런 말하면 팬들께도 죄송하지만 동기부여도 잘 안됐다." 정말 솔직한 '그 날'의 날것 그대로의 심정이었다.
시즌 종료 후 찾아온 겨울, 그는 B급 지도자 라이선스를 교육을 받으며 '얼마 남지 않은' 은퇴를 준비했다. 별 욕심도 없었다. 그렇게 2017년이 찾아왔다. "올해도 태양이 뜨고 나는 축구를 하는구나…." 큰 설렘이나 기대가 없었던 일상 속 그에게 중대 사건이 발생했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김종부 감독의 손에 들린 주장 완장이 배기종에게 전달됐다.
"사실 11년 동안 축구만 했지 주장을 해본적이 없었다. 내 성격도 주장감이 아닌 걸 내가 안다. 그래서 많이 놀라고 내심 부담도 됐다."
정원진 성봉재 최재수 조병국 이현성 이현웅에 말컹, 브루노까지 새 식구가 많았다. "내가 팀워크를 잘 꾸려갈 수 있을까." '초짜 캡틴' 배기종의 어깨가 무거웠다.
그런데 이게 웬 일, 팀은 승승장구했다. 18경기 연속 무패를 하더니 23라운드까지도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다. 배기종도 놀랐다. "처음 해보는 경험이다. 완전히 무너져가는 팀이 이렇게 다시 일어설 줄은 상상도 못했다."
배기종은 "그간 못 느꼈던 '긍정적인 긴장감'이 내 몸을 휘감더라. 선수단이 완벽히 하나로 뭉친 느낌도 정말 오랜만에 느꼈다"고 했다.
1강 경남의 초보 주장, 배기종. 정작 자신은 한 게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정말 내가 따로 한 게 없다. 진짜 신기하게 선수들이 알아서 너무나 잘 해준다. 오랜 기간 축구를 했지만 이런 선수단 분위기는 처음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난 훌륭하고 멋진 선수단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다." 과연 그럴까. 선수 생활 막판에 비로소 심장이 뛴다. 그가 설레니 경남 축구도 신바람이 난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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