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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중앙고 라커룸에서 정 감독이 그날의 심경을 털어놨다. "조금도 고민하지 않았다. 다만 식구들이 마음에 걸렸다. 오후에 발표를 보고, 고수부지에 나가 마음을 정리했다. 저녁에 아내와 소주 한잔 했다. '협회가 후임을 신 감독으로 정했을 때는 내 거취에 대해 고민할 것이다. 한국 정서상 내가 신 감독 아래 있는 것은 말이 안된다. 신 감독도 불편하다. 한국 축구가 위기다. 새판을 짜는 길에 작은 걸림돌이라도 돼선 안된다'고 했다. 처음엔 '주석아빠는 왜 바보같이 평생 양보만 하냐'던 아내가 '당신 뜻대로 하라'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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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하되,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정 감독의 뒷모습은 아름다웠다. "하룻밤에도 만리장성을 쌓는데, 아무리 짧은 기간 보필했다고 해도 분명 내가 수석코치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해 이런 일이 생긴 것"이라고 했다. "정 회장님은 최근 대표팀에서의 경험을 신 감독에게 조언해주라고도 하셨다. 조심스러운 부분인데 마침 신 감독이 전화했기에 차 한잔 했다. 내가 짧게나마 겪었던 것들을 이야기해주고, 응원을 보냈다"며 웃었다. "지금은 누가 감독이든 무조건 서포트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축구인도 아니다. 신태용이 하든, 누가 하든 우리는 이 두 경기에 올인해야 하고, 전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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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호'를 향한 응원의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신 감독을 필두로 모든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이번에 선발된 선수들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선수들이다. 남아공, 브라질월드컵, 런던올림픽 등 큰 무대를 경험한 선수들이고, 10살 전후 차이가 난다. 그안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분위기는 충분히 갖춰졌다. '최고참' 이동국부터 '막내' 황희찬까지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서, 최선을 다해 이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정 감독이 학교로 돌아온 직후인 7월 말, 중앙고에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전남 영광 대통령배 금배 전국고교축구대회에서 '깜짝 16강'에 올랐다. 중앙고는 전반기 서울 동부권역 리그 9팀 중 8위, 최근 4~5년새 전국대회 16강 이상은 전무한 '약체'였다. '대회 우승팀' 보인고와의 첫 경기에서 0대2로 패했다. 모두가 탈락을 예상한 강경상고전에서 1학년 정시우의 극장골에 힘입어 2대0으로 승리, 극적으로 20강에 오르더니, 고창북고와의 20강전(2대1 승)에선 방요셉과 정시우의 연속골로 역전승까지 했다. 16강에서 '준우승팀' 부평고에게 0대3으로 패했지만, 이들의 투혼은 눈부셨다.
원팀을 만드는 '백전노장' 정 감독의 노하우는 '기살리기'다. "잘했어!" "굿!" "예스!" 훈련장에서 정 감독은 '폭풍' 칭찬을 쏟아냈다. "우리 아이들은 패배의식에 젖어 있었다. 축구하며 상처 받은 아이들이 많았다. 이 아이들에게 '공을 그 따위로 차냐'고 윽박지르면 하던 것도 못한다. 영광서 '기살리기'의 성과를 봤다. 아이들도 '하니까 되네'를 느꼈다. 요즘은 완전히 달라졌다. 표정이 밝아졌다. 슈팅게임 땐 신이 나서 세리머니도 한다."
A대표팀 수석코치가 고등학교 지도자를 자청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정 감독은 "유럽선 나이 든 감독들이 유소년 지도자를 맡는다"고 했다. "젊은 지도자들은 감정 컨트롤이 안될 때도 많지만 경륜 있는 지도자는 여유가 있다. 자식같은 선수들이 존중받는 가운데 축구를 받아들이게 하는 노하우가 있다"고 말했다. 중앙고, '명가 재건'의 꿈도 숨기지 않았다. "4년 넘게 축구협회 임원으로 있으면서 고교 왕중왕전 대진표 추첨을 맨앞에서 지켜봤다. '우리 중앙'도 나오면 좋겠다는 바람을 늘 갖고 있었다. 한번 이뤄보고 싶다는 작은 꿈이 있다. 선수들이 '오고싶은 학교'를 만들고 싶다. 김종필 교장선생님, 교우회와 장학금 혜택 등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대표팀, 프로팀의 프로그램과 몸관리 노하우를 모교 제자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정 감독은 어린 후배들을 향한 각별한 애정을 표했다. "처음 학교로 올 때 주변에서 다들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고 하더라. 우리 애들의 실력은 대표팀, 프로팀과 다르다. 하지만 훈련장에서 보여주는 눈빛만큼은 최고 레벨이다.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면 '찌릿찌릿' 소름이 돋을 정도다. 너무 행복하다. 선수에게 그 이상 더 뭘 바라겠나. 수준이 아니라, 열정이 문제다. 이 아이들에게 뭘 더 전해줄까 하는 생각에 나는 매일 설레고 긴장된다."
축구를 통해 학생선수뿐 아니라 일반 학생들도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꿈꾸고 있다. "이런 좋은 운동장을 일반학생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반대항 축구대회, 1년 내내 리그전을 하면 좋겠다. 축구심판에 관심 있는 학생들은 따로 강습시켜 리그전 심판도 보게 하고, 연말 결승전 심판은 내가 보고…(정 감독은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장 출신이다)"라며 활짝 웃었다. "축구선수가 공부하듯, 공부하는 학생도 축구할 수 있다. 좋은 선수가 나올 수도 있다. 클래식-챌린지처럼 A-B리그로 나눌 수도 있다. 축구를 통해 학교생활이 더 즐거워지고, 공부에도 더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A대표팀, 프로팀, 모교… 세상의 모든 그라운드에서 '내가 아닌 우리' '혼자가 아닌 함께'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하는 정해성 감독. 그는 천생 축구인이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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