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엄청난 비가 쏟아지기 직전이다.
간발의 차로 처마 밑으로 피했다. '큰 일 날 뻔 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넋 놓고 비구경만 하다가는 조만간 자칫 처마가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축구. 가까스로 '최악'을 면했다. 하지만 이는 결과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과정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우즈베키스탄전 승리도,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9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란 과업에 도취될 여유가 없는 이유다.
지난 1년, 한국 축구 A대표팀을 보며 웃을 일이 없었다. 최종예선 10경기를 치를 때마다 어김없이 가슴을 졸이거나 땅을 쳐야 했다. 우즈벡과의 마지막 단두대 매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경기를 할 때마다 처마에 눈이 쌓이듯 스트레스가 켜켜이 쌓여갔다. 사실 A대표팀은 최대 목표를 달성했다. 하지만 마음껏 행복한 느낌이 아니다. 급해서 화장실 다녀왔는데 영 개운치 않은 느낌이다. 모로 가도 월드컵 본선만 가면 된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번 경우는 아니다. 지금부터 '변화'가 없다면 본선에 진출해 봐야 결과는 뻔하다. 대표팀이 힘겨운 항해를 하는 동안 물밑에서는 이런 말까지 돌았다. "이대로 본선 가야 3연패가 불을 보듯 뻔하다. 차라리 못가고 대대적 혁신을 하는 편이 미래를 위해 낫다." 무책임한 말일 수 있지만 또 오죽하면 이런 이야기까지 나왔을까.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대대적 혁신, 그야말로 뼈를 깎는 변화의 노력이 필요하다. 변화는 총체적이어야 한다.
우선, 현장이 변해야 한다. 선수는 해외파, 국내파를 떠나 태극 마크 아래 진정한 '원팀'이 돼야 한다. 헌신할 마음이 있는 선수만 러시아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실력 좀 있다고 돌출 행동을 하며 분위기를 흐리려거든 차라리 대표팀을 고사하는 편이 낫다. 없는 편이 전력에 더 도움이 된다. '원팀'을 위해서는 지도자도 변해야 한다. 소신껏 선수를 통솔할 수 있어야 한다. 기고만장한 선수가 있다면 설령 실력이 아쉽더라도 여론 눈치 보지 말고 과감히 내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평소 일관성 있는 방향이 팀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한다. 시스템을 통해 선수들이 왜 원팀이 돼야 하는지를 스스로 일깨워 줄 수 있어야 한다. 일부 개성 강한 선수들의 눈치를 보며 기분을 다 맞춰주는 건 올바른 리더십이 아니다.
이번 '진땀 진출'에 가장 크게 반성하고 변해야 하는건 바로 대한민국 축구협회다. 마지막 순간까지 이란-시리아전을 확인해야 하는 힘든 상황을 만든 총체적 책임은 협회에 있다. 일찌감치 '무능'이 확인된 울리 슈틸리케 감독에 미련을 두다 '카타르 참사'라는 벼랑 끝에 몰려서야 경질카드를 꺼냈다. 신태용 감독 선임 과정도 매끄럽지 않았다. 슈틸리케에 대한 막연한 믿음으로 두달이란 시간이 있었음에도 구체적인 플랜B를 마련하지 않았다. 상황 인식이 안일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슈틸리케 경질이란 최악의 상황은 미리 대비할 수 있었던, 대비해야만 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협회는 기술위원회 총 사퇴 국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제는 남은 본선까지 신태용호가 소신껏 항해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더 멀리는 동반 침체에 빠져 있는 연령별 대표팀을 재건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한국축구의 '미래'가 성장을 멈추면 더 이상 희망은 없다.
월드컵 9회 연속 진출이란 역사적 위업을 달성한, 아니 달성된 9월6일은 웃고 즐길 축제의 날이 아니다. 이날은 '올 뉴 대한민국 축구'가 새롭게 출발하는 첫 날이 돼야 한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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