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실내체육관에서 펼쳐진 남녀종합탁구선수권, '신동들의 반란'이 연일 이어졌다. 국내 최강자들이 총출동하는 최고 권위의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23일 신유빈(13·수원 청명중1)이 고등학생 주니어 대표 언니를 3대2로 꺾고 2회전에 진출했다. 24일 오준성(11·오정초 5년)은 초등학생 최초로 32강에 올랐다. 고등학교, 실업팀 소속 형님들을 줄줄이 꺾었다. 26일 조대성(15·대광중3)은 중학생 최초로 남자단식 4강행의 역사를 썼다. 19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유남규 감독,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유승민 IOC위원의 '중학생 8강' 기록을 뛰어넘었다.
2017년 말, 녹색 테이블을 호령한 '탁구 신동'들의 잇단 반란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첫째, 선수의 타고난 탁구 유전자와 탁구판을 잘 아는 가족들의 전문적인 지원이다. 오준성은 '런던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오상은의 아들이다. 신유빈은 탁구장을 운영하는 '삼성생명 선수 출신' 신수현 수원탁구협회 전무의 딸이다. '중학생 왼손 에이스' 조대성은 삼촌인 조용순 경기대 감독의 눈에 띄어 라켓을 잡았다. 모두 초등학교 때부터 동급 랭킹 1위를 휩쓸며 '탁구 신동'으로 인정받았다. 일찌감치 '될성부른 떡잎'으로 주목받았다. 아버지의 우월한 유전자뿐 아니라 엘리트 선수 노하우와 훈련 경험이 고스란히 2세에게 전수됐다.
둘째, 대한탁구협회의 유소년 투자 정책의 성과다. 지난해 리우올림픽 노메달 직후 협회는 차세대 선수 육성을 위한 중장기 플랜을 수립했다. 올해부터 훈련 및 국제대회 파견을 지원했다. 유승민, 주세혁 등을 길러낸 '백전노장' 강문수 전 국가대표팀 총감독이 유청소년 우수선수 훈련단장을 자청했다. 대한탁구협회 및 초등탁구연맹 부회장으로 일하며 가장 낮은 곳에서 '매의 눈'으로 어린 재능들을 살폈다. 강 부회장은 잇단 이변의 이유를 '국제 경험'과 '협회의 투자'에서 찾았다. "협회가 지난 9월 자체 예산 5000만원을 들여 박규현, 오준성, 김나영, 이다은 등 초등학생 선수들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주니어오픈에 파견했다. 11월 조대성, 박경태, 신유빈, 유한나 등 중학생들은 스웨덴, 독일 오픈에 내보냈다. 큰물을 직접 몸으로 부딪혀본 후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한수위' 선배들과의 장기 합동 훈련도 효과를 봤다. 8~9월 초등학생 유망주들은 '국가대표 후보선수' 고등학생 언니, 오빠들과 하계훈련을 함께했다. 아시아청소년선수권, 세계청소년선수권을 앞두고는 전 실업팀들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진천선수촌에서 중고등학교 선수들이 실업 선수들과 함께 훈련했다. 강 부회장은 "유소년, 청소년, 실업팀이 서로 교류하고 상생하는 분위기속에 어린 선수들의 기량이 급성장했다"고 진단했다.
셋째 종합탁구선수권의 룰 변경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부터 경기의 박진감을 높이기 위해 32강전까지 당초 7세트로 진행되던 것을 5세트제로 개편했다. 3세트를 먼저 따면 이기는 5세트제는 이변의 여지가 더 많다.7세트제는 체력과 기술, 경기운영 능력이 뛰어난 실업팀 선수들에게 유리하다. 이변의 확률이 적다. 자칫 흐름이 넘어가더라도, 만회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신동들의 반란'에 탁구계는 반색하는 분위기다. '깎신' 주세혁 삼성생명 여자팀 코치는 "어린 후배들의 약진은 반가운 일"이라고 했다. "실업팀 선수들에게 건전한 자극제가 될 것"으로 봤다. 스포츠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이토 미마, 히라노 미우, 하리모토 토모카즈 등 일본의 10대들은 이미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강문수 부회장은 "'신동 열풍'은 일회성에 그쳐서는 안된다"고 경계했다. "유승민도 신동 출신이다. 그러나 올림픽 챔피언이 되기까지 '신동'의 재능을 뛰어넘는 엄청난 노력이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성장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전세계적으로 이 정도의 '신동'은 많다. 중국을 이긴다는 믿음으로, 더욱 독하게, 더 절실하게, 더 많은 훈련을 해야 한다"고 어린 선수들을 독려했다. '오준성 아버지' 오상은 미래에셋 대우 코치 역시 "관심과 응원이 감사하다"면서도 "초등학교, 중학교 때 잘하다 소리없이 사라진 선수들을 무수히 봐왔다. 지금은 더 배우고, 실력을 키울 때"라는 말로 냉정을 유지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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