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참에 '스포츠 미투(me too)'가 들불처럼 일어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한 선수가 낸 큰 용기가 종목을 뛰어넘어 스포츠계 전반으로 퍼지는 분위기다. 체육시민단체와 여성 인권 단체 등이 대거 연대하며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의 성폭행 피해 고소 사건을 체육계 전반에 뿌리 내린 잘못된 문화를 전면적으로 갈아 치우는 도화선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문화연대와 스포츠문화연구소, 젊은빙상인연대, 체육시민연대, 100인의 여성체육인, 한국 여성단체연합 등 문화와 체육, 여성인권 등에 관련된 18개 시민단체들이 일제히 한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10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조재범 성폭력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진상규명,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화연대 최준영 사무처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기자회견에는 각종 단체의 대표자들로 약 20여 명이 나와 단상 앞에 앉았다. 이들은 체육계의 성폭력 근절과 미투 운동 확대, 잘못된 관행 타파 등의 내용이 적힌 종이를 들어 올리며 구호를 외친 뒤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임정희 문화연대 공동대표와 정용철 공동집행위원장, 최동호 스포츠연구소장,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여준형 젊은빙상인연대 대표 등이 이번 사안에 대해 대한체육회의 책임론을 제기하며 적극적인 성폭력 방지대책을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의 핵심은 '성폭력을 방조하는 체육계 침묵의 카르텔을 깨트려야 한다'였다. 이들은 "체육계 성폭력이 조재범이라는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 동안 반복적으로 오랜 시간 용인되어 온 이른 바 '침묵의 카르텔'에 의해 발생한다는 게 문제다. 성폭력 사건을 방조하고 심지어 공조하는 침묵의 카르텔을 깨트려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어 "어렵게 용기를 낸 심석희의 고발이 스포츠계 미투로 들불처럼 번져 체육계에 더 이상 이러한 성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뿌리 뽑아야 한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단호한 처벌, 그리고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문을 발표했다.
이처럼 스포츠 관련 시민단체 뿐만 아니라 문화, 인권, 여성단체가 총 연대를 통해 한 목소리를 낸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런 연대를 이끌어낸 건 올림픽 단체전 2관왕을 차지한 쇼트트랙 간판스타 심석희의 용기있는 고발이었다. 심석희는 이미 폭행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받고 2심 재판 중인 조재범 전 코치가 자신을 미성년자 시절부터 성폭행해왔다고 주장하며 지난 달 고소장을 접수했다. 심석희의 변호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은 지난 8일 오후, 이 같은 사실을 밝혔고 다음 날 문화체육관광부 노태광 제2차관이 직접 서울정부청사에서 이번 건에 관한 긴급 브리핑을 통해 피해 선수와 가족에게 사과하고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단체들은 더 강력한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또한 빙상연맹과 대한체육회 등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성폭력 문제를 방관, 방조해 온 기관의 책임자 사퇴를 요구했다. 최동호 소장은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은 취임 후 2년간 자기 사람 챙기기, 비리로 징계받은 사람들의 복권 등에만 신경 썼다. 능력도 소신도 애정도 없다"며 당장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시민 단체들의 연대는 체육계 전반에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여자 프로배구 등 프로단체 등도 유사한 피해사례가 있었는 지에 대해 다시 한번 신중하게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문화계 전반을 휩쓸 었던 '미투 운동'이 올해는 체육계로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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