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 빠르고 강하다고 해서 반드시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간혹 눈속임과 유혹이 필요하다. 투수의 구종을 말함이다.
올시즌 KBO리그 마운드에 투심 패스트볼(투심)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투심은 컷 패스트볼(커터), 싱킹 패스트볼(싱커)과 함께 이른바 '변종' 패스트볼로 불린다. 투심은 타자 앞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게 일반적인 직구(포심 패스트볼)와 다르다. 그럼에도 스피드가 포심과 비슷하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투심을 주무기로 삼는 투수들이 올시즌 강세를 보이고 있다. 현장에서는 투심을 배우려는 젊은 투수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올시즌 KBO리그 투수들의 투심 구사 비중은 지난해 6.07%(싱커 0.03% 포함)에서 9.63%로 크게 늘었다. 같은 변종 직구인 커터의 비중이 지난해 2.47%에서 3.42%로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포심 직구가 45.91%에서 43.41%, 체인지업이 10.51%에서 9.25%로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심(seam)'이란 공의 겉면을 구성하는 두 개의 흰 가죽을 꿰매 연결한 붉은색 실밥을 말한다. 검지와 중지를 실밥 4곳에 걸치면 포심이고, 2곳에 걸치면 투심이다. 투심이 홈플레이트에서 변하는 이유는 포심과 달리 공이 회전하면서 날아가는 동안 공기와의 마찰 및 압력의 영향을 불규칙적으로 받기 때문이다. 오른손 투수의 투심은 우타자를 기준으로 바깥쪽에서 몸쪽 방향으로 살짝 꺾이면서 떨어진다. 좌타자가 보면 몸쪽에서 바깥쪽으로 변하는 형태다. 변화의 정도는 투수의 스윙 궤적, 손가락이 채는 방향에 따라 다르다. 공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헛스윙 비율이 높고 맞더라도 땅볼이 되기 십상이다.
싱커가 이러한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투심과 같은 계열로 보기도 한다. 정민철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타자 시각에서)손가락을 6시 방향으로 채면 투심, 4시 방향으로 채면 싱커가 된다"면서 "팔 동작은 직구처럼 하고 손가락 끝 힘만 바꿔서 던지는 게 장점이다. 투심은 속도 편차를 크게 안주면서 심으로 인한 궤적을 변화무쌍하게 가져가는 구종이다. 삼진이 아니라 주자가 있을 때 그라운드볼을 유도하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어떤 유형의 투수냐를 논할 때 보통 땅볼과 플라이볼의 비율(GO/FO)이 기준으로 쓰인다. '1'이상이면 땅볼 유형, 이하면 플라이볼 투수로 분류할 수 있다.
올시즌 이 수치가 1 이상인 투수 대부분이 투심을 즐겨 던진다. 대표적인 투수가 LG 트윈스 타일러 윌슨이다. 윌슨의 투심 비중은 35.6%나 된다. 그의 땅볼과 플라이볼 비율은 2일 현재 1.95로 규정이닝을 넘긴 투수 26명 가운데 가장 높다. 땅볼이 많으니 병살타 유도 역시 가장 많은 15차례나 된다. LG 류중일 감독은 "투심 위력은 공끝의 변화라고 봐야 한다. 요즘은 스피드만 가지고 살아남지 못한다. 변화를 줘야 한다. 투수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윌슨도 미국에 있을 때부터 투심을 많이 던진 것으로 안다. 더그아웃에서 봐도 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키움 히어로즈 에릭 요키시 역시 투심이 주무기다. 투심의 비중이 40.0%인 요키시의 땅볼과 플라이볼 비율은 1.86으로 윌슨에 이어 2위다. 요키시의 투심에 대해 키움 장정석 감독은 "체인지업이나 커브와 함께 던지면 정말 타이밍 맞추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NC 다이노스 드류 루친스키도 직구 계열을 75% 정도 던지는데 포심과 투심, 커터를 비슷한 비율로 구사한다. 루친스키의 땅볼과 플라이볼 비율은 1.51로 이 부문 5위다.
평균 151㎞의 빠른 포심을 자랑하는 SK 와이번스 앙헬 산체스도 많지는 않지만 간혹 투심을 던진다. 다승(12승) 공동 1위, 평균자책점(1.99) 2위에 올라있는 산체스의 땅볼-플라이볼 비율은 1.44다. 롯데 자이언츠 브룩스 레일리도 투심 비중이 23.2%로 즐겨 던진다. 땅볼-플라이볼 비율은 1.50으로 6위다. 정민철 위원은 "용병중에는 레일리가 우타자 바깥쪽으로 던지는 게 눈에 띄는데, 투심이라고 확 느껴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주목할 투수는 SK 김광현이다. 직구-슬라이더, 투피치 스타일이었던 김광현은 올해 투심 비율을 16.2%로 올렸다. 땅볼-플라이볼 비율이 지난해 1.32에서 1.54로 크게 높아졌다. 병살타 유도 역시 13개로 이 부문 공동 4위다. 젊은 투수들 중에는 KT 김 민(17.4%)이 각광받는데 KT 이강철 감독은 "좀더 다듬어야 한다"고 했다. 두산 베어스 유희관, 한화 이글스 안영명과 송은범이 투심의 대가로 꼽힌다. 정민철 위원은 "작년에 은범이가 잘 던졌고, 올해는 안영명이 두드러지게 정착됐다고 본다. 유희관의 투심은 우타자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게 싱커성"이라고 했다.
정 위원은 "배트를 올려치거나 수평 스윙을 하는 것처럼 리그에 유행하는 트렌드가 있다. 구종도 마찬가지다. 던졌는데 효과가 좋으면 다른 동료들도 나도 던져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트렌드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2018-2019년 구종별 비중 변화(2일 현재, 단위 %)
구종=2018년=2019년
포심=45.91=43.41
슬라이더=17.74=17.41
체인지업=10.51=9.25
커브=10.19=10.41
포크볼=6.87=6.47
커터=2.47=3.42
너클볼=0.23=0.01
※자료제공=K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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