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한화 이글스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은 지난해 정민철 단장과 계약서를 앞에 둔 자리에서 한 가지 '특별 조건'을 제시했다.
자신을 위한 글러브를 마련해달라는 것. 대부분의 외국인 지도자들이 국내 팀과 계약할 때 여러 옵션, 편의 사항을 요구하는 경우는 있지만, '글러브'를 마련해달라는 요구는 생뚱 맞은 감이 있다. 오랜 기간 마이너리그에 머물며 빅리거들을 키워낸 수베로 감독이 단순히 '글러브를 마련할 길이 없어서' 이런 요구를 내건 것은 아닐 터. 한화는 수베로 감독의 '특별 조건'은 흔쾌히 수락했다. 자가 격리를 마친 수베로 감독은 공식 업무를 시작한 이튿날인 1월 27일 한화로부터 영문 이름(Carlos Subeo)과 백넘버(3번)가 새겨진 검은색 글러브를 전달 받았다.
이후 수베로 감독은 팀 훈련 뿐만 아니라 미디어 브리핑 시간에도 글러브를 끼고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일반 배트에 비해 얇은 이른바 '펑고 배트'를 국내외 지도자들이 들고 다니는 모습은 심심찮게 볼 수 있었지만, 글러브를 끼고 현장을 누비는 사령탑의 모습은 꽤 생소하다.
수베로 감독의 요구엔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한화 관계자는 "(계약 당시) 수베로 감독에게 글러브를 구해 달라는 이유를 물었더니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을 지도할 때 감독이라고 해서 말로만 지도를 한다면 한계가 온다. 때론 내가 직접 시범을 보이고, 선수들과 그라운드에서 함께 호흡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이너리그 코치 시절부터 항상 지켜온 원칙'이라고 답했다"며 "우리 팀 선수들을 향한 감독님의 열정이 글러브 안에 담겨 있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글러브를 낀 수베로 감독의 모습에서 권위의식은 찾아볼 수 없다. 훈련 때 선수들에게 일일히 다가가 소통하는 것은 물론, 수비-주루 훈련 때마다 직접 그라운드를 구르며 시범을 보이기도 한다. 최근 연습경기가 시작한 뒤엔 투수 교체 상황에서 직접 마운드에 오르고, 더그아웃을 분주히 오가며 격려 뿐만 아니라 공-수에서 드러난 선수들의 플레이에 대한 피드백도 이어가고 있다. 연습경기서 드러난 한화 더그아웃의 분위기도 짧은 시간만에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진삼과 열정이 더해지면 멋진 스토리가 완성된다. 수베로 감독이 쓸 독수리군단의 2021 다이어리가 더욱 기대된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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