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며칠 전 한화 이글스의 야수 등판이 화제가 됐다.
한화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은 10일 대전 두산전에서 1-14로 크게 뒤진 9회초 내야수 강경학, 외야수 정진호를 잇달아 마운드에 올렸다. 투수 소모를 줄여 다음 경기를 도모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날 중계를 맡았던 안경현 해설위원은 "프로는 경기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야수가 (투수로) 올라오는 경기는 최선을 다한 경기는 아니다. 과연 입장료를 내고 이런 경기를 봐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저 같으면 안 본다"고 말했다. 논란이 일자 그는 이튿날 방송을 통해 마운드에 오른 야수들의 부상 위험, 맥없는 한화의 경기력을 지적하고자 하는 의도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팬들은 납득하지 못했다.
야수 등판은 KBO리그에선 익숙하지 않지만 종종 있었던 장면이다.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선 오래 전부터 일찌감치 승패가 결정된 경기에서 소위 '가비지(garbage) 이닝'에 불펜을 소모하지 않기 위한 전략으로 활용해왔다. 수베로 감독 역시 같은 이유를 들며 "내게는 평범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이렇게 이슈가 될 줄은 사실 몰랐다"면서 "(그런 말을 한 이에게) 1-14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뒤집기를 해 본 경험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나머지 감독들도 수베로 감독의 선택에 긍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14일(한국시각) 치러진 워싱턴 내셔널스-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에서도 '야수 등판'이 화제가 됐다. 주인공은 워싱턴 내야수 에르난 페레즈(30). 페레즈는 팀이 1-14로 크게 뒤진 8회말 5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1이닝 동안 2탈삼진 무실점 '쾌투'를 펼쳤다. 세 타자를 상대하면서 던진 공은 '고작' 9개. 두 타자 연속 삼진을 잡고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뜬공으로 잡으면서 임무를 완수했다.
하지만 페레즈의 투구에서 가장 주목 받았던 것은 무실점이 아닌 구속이었다. 이날 페레즈의 직구 '최소' 구속은 54마일(약 87㎞). 포물선을 그리다 타자 앞에서 힘없이 떨어지는 소위 '아리랑볼'이었다. 세인트루이스 첫 타자 저스틴 윌리엄스를 4구 만에 79마일짜리 싱커로 헛스윙 삼진 처리한 페레즈는 렌 토마스와의 2S 승부에서 '아리랑볼'을 던졌다. 토마스는 방망이를 힘차게 돌렸으나, 전혀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서 삼진을 당했다. 페레즈는 구종에 따라 사이드암, 오버핸드 등 투구폼을 바꾸는 '팔색조 투구'까지 펼치면서 관중들의 박수를 받았다.
경기 후 MLB닷컴은 페레즈의 이날 투구를 조명했다. 팬들은 댓글을 통해 '놀랍다', '워싱턴은 페레즈를 선발 투수로 써야 한다' 등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미 승부가 기운 타이밍에 불펜을 아끼기 위한 벤치의 결정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승부의 '암묵적 룰'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다. 그러나 팀, 동료를 위해 마운드에 오르는 선수의 의지와 또 다른 승리를 위한 벤치의 선택은 폄훼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팬들에게 색다른 즐거움까지 줄 수 있다면 팀을 위한 헌신 뿐만 아니라 훌륭한 팬 서비스까지 된다는 점을 페레즈의 '아리랑볼'은 증명하고 있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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