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삼성 호세 피렐라의 못 말리는 주루 본능. 그냥 쉽게 죽는 법이 없다.
지난달 28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NC전. 0-0이던 3회말 선두타자로 나선 피렐라는 깨끗한 좌전안타로 출루했다.
1사 1루, 5번 오재일 타석 때 피렐라는 기습적인 2루 도루를 시도했다.
투수 루친스키가 피칭 동작을 취하기 전에 미리 스타트를 끊었다. 지난 25일 광주 KIA전 6회 브룩스를 혼비백산 하게 하며 송구 실책을 유도한 바로 그 장면의 데자뷔.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이미 피렐라의 기습적 주루플레이에 대한 NC 전력분석이 이뤄져 있었다. 루친스키는 공을 빼 1루수에게 던졌다. 피렐라가 협살에 걸렸다.
하지만 피렐라는 쉽게 죽지 않았다. 수차례 2루와 1루 사이를 오갔다. 투수 견제→1루수→3루수→1루수→3루수→1루수→2루수→유격수 태그아웃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야 벤치를 향했다. 그 사이 태그를 피하기 위한 급브레이크를 여러차례 잡았다. 무릎과 허벅지, 정강이 등에 무리가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과정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부하가 쌓인다.
피렐라의 못 말리는 승부욕. 주루 플레이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팀에 엄청나게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활력과 에너지가 그대로 전이된다. 지난 5년 암흑기 긴 터널 속에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선수들이 깨어났다. 팀 전체에 왕조 시절 DNA가 되살아 났다. 단독 1위를 달리고 있는 숨은 비결이다.
야수 최고참 강민호는 '달라진 삼성의 분위기'에 대한 질문에 주저 없이 "피렐라 선수가 선수 전체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베이스러닝 하나도 다음 타자를 위해 열심히 뛰어주고 그런 허슬 플레이가 선수단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캡틴 박해민은 "피렐라 선수가 오면서 정말 긍정적인 효과를 많이 주고 있다. '선수 하나로 팀이 이렇게 바뀔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고참 이원석도 "경기전 준비도 철저하고, 플레이 하는 걸 보면 그동안 우리가 했던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정말 열심히 하는 친구"라며 엄지를 세웠다.
다만, 딱 하나의 우려는 피렐라의 건강이다. 100kg을 육박하는 거구. 이미 발 바닥 통증을 꾹 참고 뛰고 있는 터. 벤치는 조마조마 하다.
실제 허삼영 감독은 "사실 안 다치리란 법이 없다. 염두에 두고 있다. 발바닥이 안 좋은 상태지만 참고 뛰는 상황이다. 팀에 대한 헌신은 높게 평가하지만 걱정도 된다. 하지만 자제시켜도 경기 나가면 본인이 막 뛰어버리니까 방법이 없다"며 난감해 했다. 피렐라는 지난 2일 LG전 8회 중전안타로 출루했다. 강민호의 헛스윙 삼진 때 2루도루를 시도하다 타이밍이 늦다고 판단되자 급히 되돌아와 세이프 됐다. 이때도 2루쪽으로 가속을 붙이던 다리에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실제 피렐라는 이원석의 결승타 때 홈에 들어온 뒤 살짝 다리를 절룩이는 모습으로 우려를 자아냈다. 그나마 3일 대표팀 후보 선수들 백신 접종으로 이틀 휴식이 주어진 것이 천만다행.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하는 건 언제나 옳다. 최선을 다한 주루 플레이는 수비 실수를 유발할 수 있다.
다만, 부상 만큼은 피해야 한다. 타선의 핵을 넘어 삼성 팀 분위기를 주도하는 핵심 외인. 시즌 내내 건강한 모습으로 풀 타임 활약을 펼치는 것이 주루 플레이 하나의 성공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다. 이미 피렐라는 삼성 타선에 없어서는 안될 선수다.
상황에 따른 강약 조절이 필요하다. 시즌은 길다. 매일 경기에 나서는 피렐라도 결코 철완은 아니다. 피로가 누적되면 못 느끼는 사이에 근육에 과부하가 걸린다. 자신도 모르는 새 부상이 찾아올 수 있다.
만약 후행 주자를 한 베이스 더 보내기 위한 런다운 플레이였다면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게 맞다. 하지만 NC전 당시 처럼 주자가 자신 뿐인 상황이라면 조금은 일찍 포기해도 괜찮다.
남은 118경기. 갈 길은 멀고, 피로는 먼지 처럼 쌓인다. 피렐라의 몸은 더 이상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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