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고재완 기자] 인생 밑바닥에 떨어진 엄마. 그래서 모성애가 부족해도 너무 부족한 엄마. 현실에서는 정말 '나쁜 엄마'지만 연기로 보면 가장 수준급의 난이도다.
만만치 않은 연기 내공을 가진 배우만이 소화할 수 있는 배역이다. 그런데 안방극장에서 그런 캐릭터가 등장했다. 지난 달 27일 종영한 MBC 4부작 수목드라마 '목표가 생겼다' 속 김유미다.
배우 이영진이 연기한 김유미는 엄마다. 그런데 알코올 중독자다. 딸과 함께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감옥에 다녀왔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집에 도박장을 차린 그녀다.
'목표가 생겼다'는 꽤 밝은 드라마다. 이재영(류수영)과 조윤호(김도훈)가 등장하는 시퀀스만 보면 꽤 훈훈하고 긍정적인 느낌을 물씬 풍긴다. 하지만 이영진이 등장하면 이 드라마는 '느와르'가 된다.
이영진은 '목표가 생겼다'를 마친 후 인터뷰에서 "처음 대본을 받았을때 일반적인 드라마 같은 해피엔딩이었다"고 말했다. 유미도 마트에서 일하면서 열심히 노력하다 지쳐 밑바닥으로 떨어졌다가 점점 정신차리고 좋은 엄마로 변한다. 하지만 4부작 속에 유미의 그런 변화는 어딘지 어색했다. "사람이 그렇게 금세 바뀔 수 없잖아요. 4부 속에 유미의 변화를 모두 담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이영진도 이 캐릭터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직 엄마를 해보지도 못했고 대중이 저를 바라보는 것도 그런 이미지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고민을 좀 했죠. 그런데 정말 실수하고 서툰 엄마여서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지루하지 않게 사건이나 감정이 일반적이지 않아서 대본이 흡인력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연기를 위해 아이들을 방임하고 학대하는 아이들에 관한 영상을 찾아봤다.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더라고요. 충격적인 것은 그런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연기를 하니까 많이 울고 감정적으로 힘들어서 지치기도 했어요. 촬영이 없는 날에도 감정을 가지고 있으려고 노력했거든요."
연기를 하는데 외부로 보여지는 것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한없이 우울한 캐릭터라 화장기 전혀 없는 얼굴에 다크서클만 그리고 촬영에 들어갔다. 모델 출신답게 의상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제 신들은 전부 어두운데 제 의상까지 블랙이면 묻혀버릴 것 같았어요. 이런 캐릭터에 늘 등장하는 롱스커트도 일부러 안입었어요. 그것 사실 불편하거든요. 실제로 그런 사람은 롱스커트 안입을 거예요. 어둡지만 브라운 계열이나 그레이 계열 니트로 좀더 현실적으로 표현해보려고 했어요."
유미는 스스로 병원에 찾아가 알코올 중독 치료를 시도하는 것으로 엔딩을 맞았다. "완전히 바뀌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시도하는 지점에 섰다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었던 것 같아요. 유미가 판타지 속 인물이 아니라 엄마이지만 유미라는 사람으로 등장했다는 것도 좋았고요." 사실 술을 잘 못하는 이영진이다. "그래도 취한 사람들은 많이 봐서 괜찮았어요. 정작 취한 사람 본인은 어떻게 행동하는지 잘 모르지만 옆에서 보는 사람은 잘 알잖아요."(웃음)
극중 유미는 딸 소현(김환희)에게 끝까지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다. "'목표가 생겼다'라는 작품 자체가 소현이 자신감있게 자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하는 것이거든요. 또 혈육으로 이어진 가족도 가족이지만 그렇지 않은 가족도 있을 수 있다는 열린 시선을 보여주는 작품이라서 엄마의 사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이영진은 '목표가 생겼다'를 통해 배우로서의 스펙트럼을 완벽하게 넓혔다. 데뷔작 영화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부터 씌워진 공포영화 속 이미지는 꽤 오래갔다. 하지만 '위대한 유혹자' '닥터탐정' '메모리스트' 등을 통해 코믹 등 여러가지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내공의 배우라는 것을 증명했고 '목표가 생겼다'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등 좋은 작품이며 캐릭터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출연을 결정하는 모습도 팬들이 그를 사랑하는 일부분이다.
"예전보다 여유를 찾았죠. 이제 오롯이 작품과 캐릭터로 연기를 바라볼 수 있게 됐어요. 새로운 역할을 맡으면 거기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잖아요. 결과물에 만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한 것 같아요. 인물이 어떤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가 선택의 첫 번째이긴 해요."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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