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 KBO리그 감독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투구를 물으면 "타자 방망이가 빨리 나오도록 하는 게 가장 좋은 피칭"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게 방망이에 맞든 헛스윙이든 빠른 카운트에서 승부를 해야 투수 개인이나 팀에 이득이 된다는 것이다. 볼카운트가 몰려 한복판으로 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지 말라고 한다.
단 조건이 있다. 제구가 돼야 한다. 무심코 던지는 공이 없어야 한다. 토론토 블루제이스 류현진도 한화 이글스 시절부터 수없이 들었을 말이다. 그러나 그는 5일(한국시각)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홈경기에서 장점인 제구력을 살리지 못했다. 5⅔이닝 동안 홈런 2개를 포함해 7안타와 3볼넷을 내주고 7실점(6자책점)해 패전투수가 됐다.
류현진이 올시즌 볼넷 3개를 내준 것은 처음이며, 실점은 지난해 토론토 유니폼을 입은 이후 최다 기록이다. 그만큼 제구가 정교하지 못했다. 휴스턴 타선은 메이저리그 30개팀 가운데 가장 신중하고 컨택트 능력이 뛰어나다. 팀 타율 전체 1위고, 팀 삼진은 가장 적다. 유인구에 좀처럼 방망이를 내밀지 않는다. 류현진이 빠른 승부를 하고 싶어도 유인구를 참아내니 카운트가 몰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볼넷 또는 안타를 내주고 말았다.
3회초 2사 1루서 호세 알투베를 상대로 6,7구 모두 변화구를 몸쪽으로 낮게 던졌지만, 방망이는 나오지 않았다. 3회 투구수가 24개나 됐다. 6회 무사 2루에서는 요단 알바레스가 풀카운트에서 몸쪽 체인지업을 참아내며 볼넷을 골라낸 게 류현진을 흔든 결정적 선구안이었다.
결국 류현진은 6회 볼넷 1개를 더 내주며 2사 만루에 몰린 뒤 마틴 말도나도에게 좌월 그랜드슬램을 얻어맞고 무너졌다. 무심코 던진 초구 80.5마일 체인지업이 한복판으로 몰렸고, 변화구를 노린 듯 말도나도의 방망이는 경쾌하게 돌아갔다.
여기에 야수들도 실책 1개를 포함해 안일한 수비로 류현진을 힘들게 했다. 같은 안타도 야수의 적절한 판단과 적극적인 움직임이 없으면 단타가 2루타가 된다.
류현진의 이날 직구 구속은 최고 92.4마일, 평균 89.3마일로 평소와 비슷했다. 직구 31개, 체인지업 25개, 커터 22개, 커브 11개, 싱커 2개를 던졌다. 볼배합과 게임운영에 변화는 눈에 띄지 않았다. 대량 실점은 제구 난조에 비롯됐다고 봐야 한다.
반면 상대 휴스턴 선발 잭 그레인키는 뛰어난 제구와 공격적인 피칭으로 9이닝 6안타 1실점으로 완투승을 따냈다. 그레인키가 완투승을 거둔 것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시절인 2016년 6월 8일 탬파베이 레이스전(9이닝 3안타 무실점) 이후 5년 만이다. 시즌 6승2패, 평균자책점 3.38. 올해 38세 노장 투수는 타자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듯 시종 빠른 리듬과 승부로 토론토 타선을 압도했다.
32타자를 맞아 15타자를 초구 또는 2구에 승부했고, 29타자를 상대로는 초구 스트라이크를 던졌다. 직구는 최고 92.1마일, 평균 89.9마일을 찍어 류현진과 별 차이는 없었다. 체인지업 21개, 슬라이더 19개, 커브 12개, 싱커 2개를 각각 기록했는데, 스트라이크존을 살짝 벗어나는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이 압권이었다. 성급한 토론토 타자들은 그레인키의 페이스에 말렸다.
제구력에 관해선 으뜸이라 자부하던 류현진이 옛 동료이자 선배로부터 새삼 한 수 배운 경기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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