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최근 한화 이글스 더그아웃에선 독특한 세리머니가 화제다.
홈런을 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 선수들에겐 'HANWHA EAGLES'라는 문구와 마스코트가 그려진 오렌지색 뿔테 선글라스가 주어진다. '홈런 선글라스'를 끼고 코치진,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면서 한바탕 기분을 내고 TV 중계 카메라를 향해 멋들어진 포즈까지 취하면 '임무 완수'다. 선두와 20경기차가 넘는 최하위 팀에겐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활기.
후반기를 앞두고 대체 외국인 선수로 합류한 에르난 페레즈(30)가 준비한 깜짝 이벤트. 페레즈는 최근 팀 미팅에서 '홈런을 친 선수가 세리머니를 하자'는 제안을 냈다. 이를 위해 구단 용품숍에서 사비를 털어 응원용 선글라스를 구매해왔다. 이 세리머니 제안 후 첫 주자가 공교롭게도 '캡틴' 하주석이었다. 주장이 시원하게 테이프를 끊으면서 '홈런 선글라스'는 한화 더그아웃의 명물로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한화가 페레즈를 처음 영입할 때 기대보단 우려가 컸다. 빅리그 통산 10시즌을 뛴 베테랑이지만, 최근 부진한 모습을 보인 게 컸다. 한화 합류 전 두 달 가까이 실전을 소화하지 못하면서 처진 경기력도 문제로 꼽혔다. 시즌 중반 합류하는 대체 외국인 선수에게 흔히 기대하는 타격력을 보여주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 페레즈가 1군 합류 후 초반 3경기서 11타수 1안타의 부진에 그치면서 이런 의구심은 더욱 커졌다.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은 페레즈가 실전 공백을 채우고 리그에 서서히 적응해가는 시점에서 제 실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페레즈가 한화 타선의 체질을 바꿔줄 실력과 열정,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한화 더그아웃 분위기를 달군 페레즈는 8월 말부터 빠르게 타격 페이스를 끌어 올렸고, 이달 들어 월간 타율 3할5푼3리를 기록하며 '전역생' 김태연과 함께 한화 타선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한화는 올 시즌 출발 시점 더그아웃 분위기가 가장 활기찼던 팀이다. 수베로 감독 부임 후 '우리만의 길'을 강조하면서 떠들썩한 분위기를 만들었고, 20년 만의 시범경기 1위라는 결과물도 만들어냈다. 그러나 정규시즌 부진을 거듭하면서 이런 분위기는 서서히 사라져갔고, 매년 그랬듯 '패배주의'가 팀을 휘감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의 분위기는 잃었던 시즌 초반의 기억을 조금씩 회복해가는 눈치. 페레즈가 몰고 온 기분 좋은 바람이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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