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리조트업계가 위기다. 수익성은 크게 악화됐고, 기존 생존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을 뒤흔든 코로나19는 관련 업계에도 '생존을 위한 전략 마련'이라는 과제를 안겼다. 코로나19 이전과 180도 달라진 라이프스타일에 얼마나 빨리 적응하고, 해법을 마련하냐에 따라 기업은 지속 가능 경쟁력을 인정받을 것이다. 경영 승계를 앞둔 곳이라면, 2~3세의 후계구도 완성을 위해 풀어야 할 경영능력 검증의 잣대로 활용될 수 있다. 위드코로나 시대를 앞두고 변화를 꾀하고 있는 호텔·리조트업계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 편집자 주 >
그동안 서울 도심에 위치한 호텔들은 전 세계발 출장객과 MICE 등 국제행사에 참석하는 외국인 투숙객들로 항상 붐볐다. 큰 변화나 특색이 없더라도, 접근성 하나만으로도 꾸준히 매출을 올려 왔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어진 코로나19는 이런 상황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외국인의 발길은 뚝 끊기고, 비즈니스 미팅도 급격하게 줄어든 것.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은 호텔업계는 생존을 위한 대대적인 운영 전략 수정에 돌입했다. 코로나19 종식을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닌, 위드코로나 시대를 대비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판 자체가 뒤바뀐 만큼 구태의연한 전략들은 과감히 버리고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새롭게 짜야 하는 것이다.
▶"판 뒤집혔다" 다가온 위드코로나 시대…더 플라자 호텔 생존법은 무엇?
더 플라자 호텔은 서울 중심부에 위치, 다양한 국적의 외국 고객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었다. 5성급 호텔에 걸맞은 훌륭한 시설은 물론, 쾌적한 도심 인프라로 꾸준한 인기를 얻어 왔다.
그러나 코로나 쇼크는 서울 중심부인 시청앞에 위치해 대표적인 비즈니스 호텔로 불리던 이곳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외국인이나 비즈니스 숙박객은 줄어들고, '호캉스'(호텔과 바탕스를 합한 신조어)를 즐기는 이들이 늘어났다. 이들 호캉스족들은 접근성이 다소 떨어져도 시설이나 프로그램 등이 좋은 쪽을 선호한다. 여기에 타인과의 접촉을 꺼려하면서 독립된 공간, 자연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제 호텔은 숙박이나 비즈니스를 위한 공간을 넘어 언택트 시대에 맞는 구조와 이색적인 체험 등이 가능해야 선택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즉, 비대면 트렌드가 전 산업군을 휩쓸고 있는 만큼 위드코로나 시대에 호텔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공간'에서만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콘텐츠를 키우는 것이 필수 과제가 됐다.
그렇다면 이런 분위기 속 더 플라자 호텔이 새롭게 선택한 생존 전략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회사 측은 다양한 경영 전략을 구사하고 있어 사업을 영위하는 데 무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2021년 기준 평일 30% 초반, 주말 50% 중반대의 꾸준한 예약률을 보이고 있다"면서 "최근 7~8월 주말 기준으로는 전체 객실의 60% 수준만 운영할 수 있는 가용객실 대비 80% 후반에서 90% 초반의 예약률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더 플라자 호텔은 2020년 초부터 실내 객실과 레스토랑 등에 경험 제공 콘텐츠를 대입시켜 객실 내에 캠핑 감성을 즐길 수 있는 글램핑 상품을 내놓고 패밀리 라운지, 어린이 놀이 공간 등을 새롭게 꾸몄다.
2030세대 사이에선 '더벨 스파'도 인기다. 도심 속 자연을 콘셉트로 공간 마감재를 나무와 돌, 식물 등으로 꾸민 더벨 스파는 '힐링 소비'를 즐기는 요즘 MZ세대에게 특히 호평을 받고 있다.
이외에 일찌감치 자체 브랜드(PB) 상품 개발에 눈을 돌려, 2016년 호텔에서 사용하는 향, 목욕가운, 디자인 등을 사용해 출시한 리빙 PB상품 브랜드 'P 콜렉션'을 선보였다. 호텔 유니폼 특성을 살린 시그니처 테디베어와 키즈 후디 로브 등을 선보이는 등 사업 다각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
하지만 일부에서는 더 플라자 호텔이 코로나19 이후 소비자들의 특성 변화에 면밀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먼저 타 호텔 대비 비좁은 객실이 종종 거론된다. 실제로 더 플라자 호텔의 디럭스 룸 크기는 9평 수준으로, 11평인 타 호텔 평균에 비교해 좁은 편이다.
호텔 측은 객실 크기에 대한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타 호텔 대비 합리적 가격 정책을 시행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방 안에서 대부분의 숙박 시간을 보내는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는 점은 더 플라자 호텔에게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2010년 800억원을 들여 진행한 리노베이션에 대한 평도 엇갈린다. 화려한 부티크 호텔 콘셉트를 내세웠는데, 최근 유행하는 미니멀 트렌드와는 결이 맞지 않는다는 것. 미니 바에서부터 어메니티 등 룸 구석구석을 SNS에 찍어 올리는 요즘 소비자들의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평.
특히 최근 호텔 선택에 있어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수영장 또한 다소 올드한 느낌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요즘 호텔 이용객들이 선호하는 수영장의 형태는 탁 트인 개방감을 느낄 수 있거나 인스타그래머블한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곳들이다. 대표적인 5성급 호텔 수영장 중 하나인 밀레니엄 힐튼 서울은 여름 시즌 야외 선베드를 오픈했다. 여의도의 콘래드 서울은 창가 옆에 의자를 배치하고 내부 인테리어에 공을 들여 개방감을 높였다. JW메리어트 동대문은 화려한 인테리어와 자쿠지로 지하에 위치한 실내 수영장이라는 공간적 약점을 보완했다. 안다즈 서울 강남 역시 통창이 없어 답답함을 느끼는 고객들을 위해 7m 규모의 대형 LED 스크린을 설치하고 탁 트인 서울 풍경을 보여주는 '센스'가 돋보인다는 후기가 쏟아진다.
이와 달리 더 플라자 호텔의 수영장은 고층 건물에 둘러싸여 있어 다소 답답한 느낌을 지울 수 없고, 독특한 콘셉트를 장착하거나 특장점을 명확히 내세우기 다소 애매해 아쉬움을 남긴다.
이 가운데 빼어난 접근성으로 비즈니스맨들 사이에서 그간 쌓아왔던 독보적이던 위치도 위협을 받고 있다. 신세계조선호텔의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 서울역·명동·강남 등 지리적 위치와 힙한 감성을 모두 잡은 신규 호텔들이 비즈니스 미팅 고객부터 MZ세대까지 사로잡으며 매섭게 성장중이라는 점도 그다지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에 주력했던 중·장년층과 가족 단위 고객 외에 가치소비를 중시하고 원하는 것에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2030 MZ세대의 이목을 끌 만한 콘텐츠가 부족해 보인다"면서 "단순한 이색 패키지가 아닌, 달라진 소비 패턴을 적극 반영하고 고객들의 지속적인 충성도를 확보해 나갈 만한 획기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편중인 한화 후계 구도…삼남 김동선, '강력한 한 방' 보여줘야 할 때
더 플라자 호텔은 2010년 석 달여 간의 '레스토랑 MD 개편 프로젝트'를 거쳐 유명 셰프들에게 '외주'를 주는 전략을 과감히 사용했다. 국내 특급호텔에서는 첫 사례로, 도원(중식당)과 세븐스퀘어(뷔페)를 제외한 나머지 레스토랑 공간에 미쉐린 1스타 한식당인 주옥, 디어 와일드, 르 카바레 시떼, 더 라운지를 유치했다.
더 플라자 측은 "미쉐린 1스타로 레스토랑 하나를 키우려면 엄청난 시간과 돈이 들어간다. 외주 전략을 통해 고정비 지출을 줄인 것은 물론이며, 주옥 등의 인기를 등에 업고 자사 호텔의 브랜드 각인 효과까지 얻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부 호텔업계 관계자는 해당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곧장 더 플라자 호텔 이미지 제고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특히 '미식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확연히 늘어나면서, 호텔의 F&B는 단순한 매출 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됐다.
요즘 유명 호텔의 레스토랑 브랜드들은 적극적으로 소비자 접점을 확대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일례로 이랜드파크 켄싱턴월드에서 전개하는 호텔 프리미엄 베이커리 브랜드 '프랑제리'는 최근 신촌에 '프랑제리 피어'를 오픈했는데, 단기간에 신촌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부터 한화그룹 오너가 삼남인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PL(Premium & Leisure)그룹장이 새롭게 부임, 그의 행보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 그룹장은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의 PL 직무를 맡아 승마 관련 사업과 프리미엄 레저분야 신사업 모델 개발을 이끌어가게 된다. 현 단계에선, 호텔과 '무관'한 업무를 맡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재계 일부에서는 이들 사업과 향후 호텔업과의 시너지 등 연관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는 시각을 보낸다.
이와 함께 한화호텔앤드리조트에서 김 그룹장이 어떤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줄지에 따라 경영 능력 입증이 결정되는, 이른바 '경영 승계 시험대'에 올랐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내비치고 있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의 2021년 상반기 말 매출액은 2182억원, 영업손실액은 522억원을 기록했다. 최근 수 년간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김 그룹장은 평소 외식업에 대한 관심과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에서 아시안 레스토랑 등을 운영했으며, 지난 7월에는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스기모토'라는 이름의 일식집을 개업하기도 했다.
한때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 면세점 사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하기도 했던 김 그룹장은 면세점이 철수하면서, 아직까지 눈에 띄는 성과를 이룩하진 못했다. 때문에 본인의 입지를 확실하게 굳힐 만한 '강력한 한 방'을 보여줘야 할 때라는 의견도 있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한화그룹 내 유통사업 규모는 전체 그룹 매출액의 단 3%에 그치지만, 그룹에서 더 플라자 호텔이 상장하는 바는 크다"며 "한화호텔앤드리조트만 놓고 봐도 호텔 사업이 우선적으로 탄탄하게 뒷받침되어야 승마·레저 등 신사업에도 안전하게 손을 뻗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민정 기자 mj.ch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