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스포츠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무단 이탈을 했는데 프런트의 신임을 받아 살아남았다. 대신 모든 책임은 감독과 단장이 지게 됐다.
여자프로배구 IBK기업은행이 비상식적인 결단을 내렸다. 최근 두 차례나 팀을 이탈했던 세터 조송화, 김사니 코치와 불화를 겪은 서남원 감독은 지난 21일 선임 반년만에 경질됐다. 팀내 불화와 성적 부진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실무 총책임자인 단장도 동반 경질했다.
놀라운 건 다음 행보. 이탈 선수 문제 등에 대한 책임 차원에서 사직 의사를 표명했다는 김사니 코치에 대해선 사의를 반려하고 오히려 감독대행 직책을 맡겼다. 구단 관계자는 "수석코치가 개막 한 달 만에 팀을 떠났고, 세 번째 코치인 안태영 코치는 경험이 부족해 부득이하게 김 코치에게 감독대행을 맡기게 됐다"고 설명했다.
복수의 배구인들은 "시즌 초반에 코치가 팀을 이탈했고 구단이 코치가 요청한 휴식을 받아준 것도 이례적이다. 그런 코치에게 감독대행을 맡기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배구 관계자는 "지난 17일 두 번째 이탈 이후 지난 19일 팀에 돌아온 김 코치는 지난 20일 현대건설전이 열리기 전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밝은 표정이었다"고 귀띔했다.
복수의 배구 관계자들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최근 조송화의 무단 이탈 문제가 세상 밖으로 드러나자 선수의 임의해지 대신 타 구단으로의 트레이드 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성사될 리 만무했다. 이미 업계에는 조송화와 김 코치와 사령탑의 감정대립 소문이 파다했다.
기업은행 내 항명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년간 팀을 이끌었던 김우재 전 감독 시절부터 시작됐다. 팀운영의 중심은 감독이 아니었다. 몇몇 베테랑 선수들과 이들을 관리해야 할 김 코치의 존재감은 컸다. 선수가 부족한 국내 여자배구 현실에서 프런트 역시 고참급 선수들을 무시하지 못했다. 감독은 그야말로 '그림자'였다.
김 전 감독이 떠나고 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 불화의 발단은 선수들간의 극심한 견제였다는 증언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서 감독이 리시브 안정을 위해 실업 무대에서 뛰던 선수를 데려오면서부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일부 선수들과 김 코치는 수석코치의 지도 방법에도 반기를 들었다. 그 과정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구단에 보고했다. 수석코치는 팀을 떠났다. 당시 구단 관계자는 "수석코치가 아픈 가족을 홀로 돌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고 포장했다.
이번 사태는 그 동안 한국 여자배구에 곪아있던 부분이 터졌다는 평가다. 가장 큰 문제는 선수층이 두텁지 못하다보니 즉시전력 선수 부족에 프런트는 기존 주전들에게 목을 매는 상황이다. 이렇다보니 일부 주전 선수들은 실력과 상관없이 개인 자존심만 세운다. 특히 '배구 여제' 김연경과 도쿄올림픽 4강 신화 등 높아진 인기를 통해 샐러리 캡도 늘어났다. 하지만 선수들의 프로의식 함양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선수층을 두텁게 하기 위해선 아시아쿼터 도입과 2군 리그 창설이 필요하다. 이번 사태로 구단 프런트들도 뭔가 느끼는 점이 있어야 한다. 비정상이 정상처럼 굳어지면 피해는 모두의 몫이다.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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