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전남 드래곤즈 수비수 최정원은 8일 오후 광양축구전용구장에서 열릴 부천FC와의 '하나원큐 K리그2 2022' 31라운드를 준비하면서 경기 중 골키퍼를 맡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정원이 홈팬 앞에서 골키퍼 장갑을 낄 운명은 불현듯 찾아왔다.
상황은 이렇다. 후반 19분, 임찬울의 골로 전남이 1-0으로 앞서가던 후반 40분. 전남은 코너킥 상황에서 닐손주니어에게 헤더로 동점골을 헌납했다. 엎친 데 덮친 격 전남 골키퍼 김다솔이 헤더를 막으려다 착지 과정에서 무릎을 다치고 말았다. 들것에 실려나갈 정도로 심한 부상이었다. 전남은 후반에 들어 추상훈 장성재 이중민을 빼고 플라나, 최호정 박인혁을 투입하며 교체카드를 이미 다 소진한 터였다. 방법은 단 하나, 필드플레이어에게 골문을 맡기는 것.
이장관 전남 감독은 고민에 빠졌다. 신장이 큰 센터백 고태원은 페널티 박스에서 공중볼 싸움에 임해야 했다. 결국, 최정원에게 골키퍼 임무를 부여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부천이 기세를 올려 몰아치던 시점이라, '필드플레이어 골키퍼'가 자칫 '리스크'가 될 수도 있었다. 이 감독은 "(추가시간 7분이)저에겐 무척이나 긴 시간이었다"고 토로했다. 최정원은 "내가 골키퍼를 맡으리라곤 '1'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그래도 형들보단 내가 골키퍼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자청했다. 추가시간이 몇 분이란 얘기를 들었는데, 경기가 끝날 생각을 하지 않더라"고 당시를 돌아봤다.
최정원은 무실점 선방쇼를 펼쳤다. 추가시간 1분 이시헌의 슛을 안정적으로 쳐냈다. 5분, 상대의 역습 상황에서 적절하게 박스 외곽으로 달려나와 공을 커트했다. 7분 조현택의 감아차기 슛을 손이 아닌 발로 걷어낸 장면이 하이라이트였다. 최정원은 "제가 필드(플레이어)라서 그런지 손으로 막을 생각을 못 했다. 아무 생각없이 발이 나갔던 것 같다"며 "(김)현욱이가 프리킥 차면 막아주곤 했다. 연습했던 게 도움이 됐던 것 같다"며 웃었다.
부천으로선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몰아치는 타이밍에 전문 골키퍼까지 없는 상황에 놓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영민 부천 감독은 선수들이 끝까지 추격 의지를 내보인 점에 대해선 만족해했지만, 승점 1점만 챙긴 점에 대해선 "아쉽다"고 말했다.
최정원은 느낀게 많은 눈치였다. "골키퍼를 해보니 앞에 있는 수비수들이 더 열심히 뛰어줬으면 좋겠더라. 이제 키퍼의 마음을 알았으니, 앞으론 더 열심히 뛰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 똑같은 상황이 재현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때에도 골키퍼를 맡을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고민도 하지 않고 이렇게 답했다. "한번 해본 사람이 더 낫지 않을까요." 이것으로 최정원의 '부캐'는 골키퍼로 확정됐다.
광양=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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