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준비된 지도자'는 좀 달랐다. 정경호 성남FC 감독대행(42)은 사령탑 데뷔전을 앞두고 "부담을 느낀다"고 토로했지만, 지휘봉을 휘두르는 스킬은 전혀 초보답지 않았다.
지난 24일부로 물러난 김남일 전 감독으로부터 지휘봉을 건네받은 정 대행은 28일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수원FC와의 '하나원큐 K리그1 2022' 23라운드에서 월드컵까지 밟은 선수, 6년간의 기나긴 코치 경험과 노하우를 모두 녹였다. K리그 현장에서 왜 정 대행을 두고 '아이디어 뱅크'라고 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경기였다.
그는 3연패에 빠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베테랑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여겨 중원에 권순형을 세우고, 스리백의 가운데 수비수로 최근 잘 기용되지 않던 곽광선을 배치했다. 베테랑들이 주변의 젊은 선수들과 시너지 효과를 누릴 것으로 봤다.
곽광선을 중심으로 한 수비진은 전반 37분 이승우에게 단 한 골을 내주며 2대1 승리를 뒷받침했다. 김영광은 후반 막판 무릴로와 김 현의 슛을 몸을 날려 쳐냈다. 정 대행은 "베테랑들이 제 역할을 해줬다"고 말했다. 권순형은 경기 후 "우리 베테랑들이 한 발이라도 더 뛰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후반 교체술도 인상적이었다. 전반에 선제골을 넣고 날카로운 프리킥으로 골대를 강타한 주전 공격수 뮬리치를 후반 14분만에 벤치로 불러들였다. 김민혁 이재원 등 활동량 많은 미드필더들을 투입해 전방 압박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뮬리치보단 발이 빠른 팔라시오스가 더 유용할 거란 판단이었다.
팔라시오스는 투입 7분 뒤인 21분 역습 상황에서 빠른 발을 이용해 두번째 골을 터뜨렸다. 성남 입단 후 20경기만에 데뷔골을 넣었다. 후반에 투입된 수비수 강의빈 조성욱은 상대의 파상공세를 몸을 날려 버텨냈다. "선발로 뛴 선수, 교체로 나선 선수 모두 서로에게 악수를 할 수 있는 경기를 하자"는 정 대행의 요구에 선수들이 응답했다.
이날 승리로 성남은 승점 21점을 기록하며 플레이오프권인 11위 김천 상무(27점)와의 승점차를 6점으로 좁혔다. 남은 10경기에서 뒤집기 불가능한 점수차는 아니다. 김영광은 "남은 경기서 기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는 정 대행 개인에게도 뜻깊었다. 1980년생인 그는 K리그 사상 최초로 승리를 거둔 '1980년대생 사령탑'으로 등극했다. 사령탑 데뷔전에서 승리한 59번째 감독이다.
정 대행은 승리한 날에 2016년을 떠올렸다. 성남FC가 2부로 강등된 해다. 그는 "그때 팀이 강등을 당했다. 그것에 대한 책임감이 크다. 성남으로 돌아와 2년 연속 잔류했지만, 올해도 강등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올해는 2016년도와 다르다. 그땐 2군 코치로서 내가 뭘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다. 최대한 경험을 살리고 선수들과 믿음을 다지면서 팬들에게 끝까지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어게인 2016'은 없을 것이라는 다짐이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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