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 "이런 슬픈 승리는 다시 하고 싶지 않네요."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최용수 강원FC 감독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대화 중간 음성이 파르르 떨리는 게 울먹이는 듯했다. 화제가 됐던 강원과 FC서울의 K리그1 9라운드 혈전(26일)의 여운이 가시기 전인 27일 오전 회복훈련을 준비하던 최 감독과 인터뷰했다.
전날 열린 경기는 '최용수 더비'라 불렸는데, 경기 후 공식 인터뷰에서 '9경기 만의 첫승'에 집중하느라 미처 듣지 못한 '최용수 더비' 뒷이야기가 궁금했다. 반응은 전혀 예상밖이었다. 전날 인터뷰에서 "많은 승리를 해봤지만 이번 승리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살짝 미소지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최 감독이다. 4무4패 끝에 첫승을 신고한 터라 마냥 기뻐할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울먹일 일도 아니었다. 홈팬들에게 짜릿한 극장 승리였기에 더욱 그랬다.
사실 강원에겐 기적같은 승리였다. 경기 전 강원의 승리를 예상하기란 힘들었다. 서울의 엔트리에는 나상호 임상협 황의조, 윌리안, 일류첸코, 팔로셰비치 등 무시무시한 해결사가 즐비했다. 반면 강원은 22세이하 양현준 박상혁과 김대우가 전방에 섰고, 벤치 대기 갈레고를 제외한 외국인 선수 3명은 엔트리에 들지도 못했다. 게다가 서울은 팀 득점 공동 1위(18골), 강원은 최하위(6골)였다. 강원의 승리 확률이 '제로'에 가까웠지만 침묵하던 '영건' 양현준이 '폭풍 드리블'에 이어 선제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2-0으로 앞서다가 2-2로 쫓긴 뒤 후반 45분 이웅희의 '극장골'로 승리했다.
그런 '짜릿함'의 여운이 남아 있을 줄 알았지만 최 감독의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그동안 힘든 상황에서 취재진 앞에서 인상을 쓰거나, 특유의 '입담'을 잃지 않았던 그는 '서울'이란 단어가 나오자 숙연해졌다.
최 감독은 "춘천 경기를 마치고 강릉 클럽하우스로 돌아오는 동안 흥분됐던 마음이 진정되면서 차분하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데 불현듯…"이라며 잠깐 말을 더듬었다. 이래저래 복잡한 심정 때문에 밤새 뒤척였다는 최 감독은 "'왜 하필 9경기 만에 만난 상대가 서울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서울에서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며 마음은 슬펐다"고 말했다. "나를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도록 만들어 준 팀이 서울인데 이게 무슨 기구한 운명인지…, 승리하고도 괴로웠다"고 했다. 최 감독은 여전히 '친정팀' 서울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독수리' 최용수는 누가 뭐래도 '서울의 레전드'다. 선수 시절 신인왕, MVP를 서울에서 수상했고, 지도자로 변신해서는 서울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동안 지도자 최용수는 '승부사' '밀당의 귀재' '위기 해결사'로 명성을 얻으며 여기까지 왔다.
최 감독과 서울의 '기구한 운명'은 1년 전에도 비슷하게 있었다. 지난 시즌 강원은 초반 2승1무1패로 잘 나가다가 디노의 부상 아웃 이후 연속 무승에 빠졌다가 9경기 만에 승리(1대0)했는데 상대가 서울이었다. '4무4패 후 승리'는 작년과 올해 똑같다.
강원의 현재 전력 구성상 굳이 서울을 이기겠다고 '묘수'를 쓸 형편도 아니었다.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어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악착같이 버틴 것 뿐이었는데 하필 상대가 서울인 것이다.
강원에 부임하면서 새로 생겨난 흥행상품 '최용수 더비', 보는 팬들은 재미있겠지만 2년 연속 기구한 만남을 겪은 최 감독에겐 '슬픈 승리'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더 이겨야 하는 입장에서 어찌보면 사치다. 정신차리고 10라운드 준비해야 한다"며 서둘러 훈련장으로 향한 최 감독은 이내 '독수리'로 돌아갔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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