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 용 기자] 경기만 이겼다면 완벽했을텐데.
모두에게 '득'이 된 깜짝 선발 등판이었다. 살아있는 전설, 삼성 라이온즈 마무리 오승환 얘기다.
오승환에게 2023년 5월3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것 같다. 2005년 프로 데뷔 후 단 한 번도 선발로 등판한 적이 없었던 철벽 마무리인 그가, 처음 선발로 등판했기 때문이다.
오승환은 키움 히어로즈와의 홈경기에 데뷔 첫 선발로 등장, 5이닝을 던졌다. 3실점. 팀이 1대4로 패하며 패전투수가 됐지만, 삼성과 오승환 입장에서는 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을 경기였다.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오승환은 이날 예정된 투구수보다 많은 73개의 공을 뿌렸고, 직구 최고 구속은 149km를 찍었다. 지난 시즌부터 직구 구속이 뚝 떨어져 140km 초반대에 그치던 오승환이었는데, 선발로 많은 공을 뿌리며 밸런스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게 박진만 감독과 정현욱 투수코치가 의도한 바였는데, 오승환이 그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았고, 첫 선발 경험이지만 5이닝을 소화하며 제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사실 삼성과 박 감독에게 오승환의 존재는 딜레마였다. 데뷔 후 마무리 보직을 놓아본 적이 없는 레전드. 연봉도 무려 14억원을 받는다. 하지만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구위가 떨어지니 마무리로 나와 위기를 초래하는 경기가 늘어났다.
그렇다고 오승환의 보직을 바꾸기도 어려웠고, 2군에 보내는 건 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박 감독이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려 계투로 보직을 변경했고, 트레이드를 통해 김태훈을 데려오는 등 긴급 조치를 했지만 오승환이라는 상징성 있는 선수가 불펜 투수로 있는 게 참 어색한 일이었다.
그런 와중에 정말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오승환의 선발 등판. 명 불펜 투수였던 정 코치가 현역 시절 자신의 경험을 살려 오승환과 엄청난 기획을 짰다. 당사자들에게는 '살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야구팬들에게는 엄청난 볼거리였다. 오승환이 선발로 등판하자 평일임에도 경기장에 무려 1만3394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일본에서도 관심이었다. 오승환은 2013년부터 2년 동안 한신 타이거즈에서 뛰었었다.
일단 이날 선발 등판으로 선수 본인이 자신감을 회복한 게 가장 중요하다. 오승환은 경기 후 "공에 힘이 실렸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박 감독과 정 코치도 조금 더 편하게 불펜 구상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2군으로 내려갔다. 더 확실히 몸을 만들어 마무리 보직에 재도전하겠다는 의지. 구위만 회복된다면 언제든 마무리 문은 열려있다. 팬들에게도 최고의 이벤트였다. 언제 오승환이 선발로 던지는 경기를 볼 수 있겠는가. 무지막지하게 얻어터졌다면 선발 등판의 의미가 퇴색될 뻔 했는데, 오승환답게 훌륭한 피칭을 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됐다. 물론, 삼성이 이겼다면 더 완벽했겠지만 말이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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