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초 선두타자 김혜성이 중전안타를 치고 나갔다. 3회말에 1점을 먼저 뺏긴 키움의 즉각적인 반격이다. 올 시즌 12개의 도루를 시도해 단 한 개의 실패도 없는 도루 1위의 '대도' 김혜성이다.
24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 KT 위즈 경기에서의 결정적 장면이다.
퀵모션에 약점이 있는 잠수함 투수 고영표와 올 시즌 도루 저지율 7.7%에 머물고 있는 장성우 포수가 김혜성의 빠른 발을 막을 수 있을까?
2루로 뛰게 만드는 순간 거의 100% 확률로 김혜성이 도루에 성공한다고 보면 된다. 상대 선발은 키움의 에이스 안우진. 한 점 차로 승부가 갈릴 수 있는 경기다. 김혜성의 진루를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고영표의 견제가 시작됐다.
초구가 파울이 된 후 두 번의 날카로운 견제구가 연이어 들어갔다. 2구째 투구 후 고영표가 다시 한번 1루로 견제구를 뿌렸다. 낮게 깔린 공을 받은 박병호의 글러브가 물 흐르듯이 그대로 뒤로 움직이며 김혜성의 허리를 스쳤다.
1루심의 판정은 세이프였지만, 박병호가 곧바로 비디오판독을 요청했다. 선수 본인만이 알 수 있는 찰나의 시차를 경기장의 모두가 느린 화면으로 확인했다. 박병호가 빨랐다.
이날 경기를 중계한 류지현 KBSN 해설위원은 박병호의 이 장면에 대해 "대부분의 1루수들은 저렇게 낮은 공을 받으면 글러브를 들어 올리게 되는데, 박병호는 전혀 그런 동작 없이 공의 이동 경로 그대로 글러브를 뒤로 움직여 태그했다. 절대 아무나 할 수 없는 고도의 테크닉이다"라며 극찬했다.
심판의 판정 번복이 선언되기 전 이미 아웃을 확신한 박병호가 조용히 외야를 바라보며 걸어갔다. 고영표의 시선이 계속 박병호를 쫓아갔지만, 박병호는 끝내 투수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 한 고영표를 박병호는 왜 외면했을까?
고영표를 보는 순간, 박병호가 마주치게 되는 시선이 또 있었다. 바로 키움 더그아웃의 옛 동료들이다. 2022시즌 KT로 이적하기 전까지 9시즌을 버건디 유니폼을 입고 뛴 박병호는 진정한 더그아웃의 리더로 후배들의 존경을 받았다. 박병호가 키움을 떠날 때 누구보다 가슴 아파한 그 동생들이다.
아쉬워하는 옛 동료들 앞에서 박병호는 웃지 않았다. 그래서 고영표마저 애써 외면해야 했다. 이 순간 박병호가 보인 유일한 기쁨의 표현, 2루수를 보며 손가락을 살짝 들어 보인 게 전부다. 홈런을 치고도 상대 팀 앞에서는 세리머니를 하지 않는 박병호. 그라운드 안에서 좀처럼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그의 배려심은 참 한결같다.
김혜성이 견제구로 아웃된 후 키움 임지열이 좌측 펜스를 맞히는 큼직한 안타를 날렸다. 키움으로서는 김혜성의 견제사가 뼈아플 수밖에 없었다. 고영표는 7회까지 단 4안타만을 내주며 키움 타선을 봉쇄했다.
KT 야수들의 멋진 수비가 고영표에게 큰 힘을 실어줬다. 1회초 키움 선두타자 이정후의 중견수 키를 넘기는 큼직한 타구를 김민혁이 점프해내며 잡아낸 것을 시작으로 박병호의 결정적인 태그까지…고영표는 직전 등판의 쓰라린 기억을 모두 지워 버렸다.
시즌 3승(2패)을 수확한 고용표의 호투 속에 4대1로 승리한 KT는 키움을 상대로 4연패 후 귀중한 첫 승리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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