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중국)=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황선홍호 측면 수비수 박규현(디나모드레스덴)이 총총 걸음으로 '도망'가는 장면이 결정적인 두 번의 골장면만큼이나 회자된다.
박규현은 1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황룽스포츠센터스타디움에서 열린 중국과 항저우아시안게임 8강전에서 전반 홍현석(헨트) 송민규(전북)의 연속골로 팀이 2-0으로 앞선 후반 21분쯤 중국 선수와 시비에 휘말렸다.
상황은 이렇다. 교체투입된 공격수 팡하오는 자기 진영 우측 사이드라인 부근에서 패스할 타이밍을 놓쳐 주춤거리고 있을 때 정우영(슈투트가르트)이 재빠르게 달려와 일차적으로 공을 차단했다. 팡하오는 넘어진 상태로 공 소유권을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박규현에게 넘어간 공을 다시 되찾은 팡하오는 한국 진영으로 달려가려고 했다. 이때 박규현이 손으로 팡하오의 바지를 잡아챘다. 박규현의 파울에 흥분한 팡하오는 항의의 표현으로 박규현에게 달려가 박규현의 몸을 가슴으로 밀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중국, 한국 선수들이 우르르 몰렸다. 기술지역에 서있던 중국 감독도 팡하오를 말리기 위해 그라운드 안으로 달려왔다.
당장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우려했던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건 현장(?)'에 박규현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규현은 주심에게 '나는 아무것도 안했다'는 제스처로 두 손바닥을 바깥쪽으로 향하게 하여 가슴 위치에 올렸다. 그리고는 손은 그대로 둔 채 한국 진영으로 휙 방향을 돌려 총총 달려갔다. '나는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확실하고 분명하게 심판과 중국 선수들에게 전달한 것이다.
순간 기지를 발휘한 영리함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파울을 한 주체는 박규현이었다. 자칫 싸움에 휘말려 물리적 충돌을 벌였다면, 최악의 경우 경고를 받을 수도 있었다. 황선홍 감독이 중국전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경고, 퇴장 상황이 나오는 걸 조심하자는 메시지를 남겼던 터다. 우승으로 목표로 하는 팀은 토너먼트에서 경고누적과 같은 변수를 최소화해야 하는 법이다.
박규현은 경기 후 "상대와 충돌했지만 그 다음에 굳이 내가 더 싸울 필요가 없어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 바로 상황을 모면하고자 했다. 중국 선수와 특별한 이야기를 나눈 건 없다"고 말했다. 주심의 중재로 두 선수는 화해하며 상황은 깔끔하게 마무리됐다.
박규현의 행동을 지켜본 동료들의 반응은 비슷하다. '박규현이 박규현했다'는 반응이다. 공격수 조영욱(김천)은 "그냥 웃기던데요"라고 말했다. "꼴통"이라고 칭했다. 맏형 박진섭(전북)은 "규현이가 팀에서 분위기메이커다. 그렇게 경기장에서 한번씩 그런 모습 보여주는 거 보면서 '규현이답다'는 생각이 들어 귀여웠다"고 했다. 박규현은 울산 유스 출신으로 일찌감치 독일로 유학을 떠나 현재 독일 3부 드레스덴에서 뛰고 있다. 박진섭은 "자유분방한 선수다. '세상엔 이런 친구도 있구나' 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며 미소지었다.
한국은 이날 백승호 한 명만이 경고를 받았다. 경고트러블 없이 4일 우즈베키스탄전에 나선다.
항저우(중국)=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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