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유명한 첫 문장이다. 2023년 한화 이글스를 이 글에 빗댄다면 '긴 어둠의 터널을 벗어나니 살짝 빛이 보였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짙은 어둠 속에 갇혀 있다가 햇살 가득한 광장 쪽으로 살짝 한 발을 내밀었다.
레전드 장종훈 김태균을 불러낸 '23세' 홈런-타점왕이 탄생했다. 시속 160km 강속구를 던지는 '20세' 신인왕이 나와 류현진(36)을 소환했다.
3년 연속 바닥을 치고 '탈꼴찌'를 목표로 출발. 4년 연속 꼴찌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2023년 시즌을 시작했다. 시범경기에서 1위로 했다고 한화를 중위권 팀으로 보는 야구인은 없었다.
키움 히어로즈와 개막전에 선발 등판한 1선발 버치 스미스가 3회에 자진 강판했다. 2⅔이닝, 60구를 던지고 부상으로 방출되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졌다. 개막전부터 3연패. 7경기에서 6패를 당했다.
지난 5월 중순, 최원호 감독 체제로 전환. 팀을 재정비해 싸웠다. 6월 말부터 7월 초에 걸쳐 8연승을 달렸다. 5강까지 닿을 것 같았다.
그러나 중위권 도약, 가을야구는 '신기루'였다. 전력 자체가 약해 금방 한계가 드러났다. 약한 뎁스를 메울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꼴찌는 면했다.
성적은 계속해서 최하위권. 그래도 팬들은 한화 야구를 다시 봤다. 이전에 비해 맥없이 물러나지 않았다. 패배가 예정된 뻔한 경기가 줄었다. 무엇보다 노시환(23), 문동주(20)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 항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주역인 둘이 희망을 심어줬다.
131경기에서 타율 2할9푼8리, 153안타, 31홈런, 101타점. 프로 5년차 노시환이 KBO리그를 대표하는 최고 타자로 우뚝 섰다. 입단 2년차 문동주는 23경기에 나가 118⅔이닝을 던졌다. 8승8패-평균자책점 3.72를 기록하고 신인왕에 올랐다.
올해는 우완투수 김서현(19), 좌완투수 황준서(18)가 대기한다. 2023, 2024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라운드 지명 선수다.
김서현은 프로 첫해 시행착오가 있었다. 시범경기 때 부진해 2군에서 시즌을 맞았다. 1,2군을 오갔다. 중간투수로 시작해 불안한 모습을 보여줬다. 선발을 시험했으나 기대했던 결과를 내지 못했다.
20경기에서 1세이브, 평균자책점 7.25. 22⅓이닝 동안 4사구 24개를 내주고, 삼진 26개를 잡았다. 그를 지켜본 야구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클래스가 다른 선수다. 적응하면 최고가 될 것이다"라고 한다. 올해는 구원투수로 집중한다.
미야자키 교육리그에 출전하고, 같은 장소에서 이어진 가을훈련을 소화했다. 이 과정을 지켜본 최원호 감독은 "이전보다 제구가 좋아졌다. 스트라이크만 던지면 치기 쉽지 않은 공이다"라고 했다. 지난해 그를 힘들 게 했던 제구 좋아졌다는 칭찬이다.
김서현은 교육리그에 대해 "결정구가 부족하다는 건 재확인했다. 초구 싸움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고 했다. 문동주도 첫해 주춤하다가 2년차에 잠재력을 드러냈다. 올해는 김서현 차례다. 실패의 경험이 그를 일으켜 세울 것이다.
아직 공식 경기도 안 치른 고졸루키. 벌써부터 선발 후보로 거론된다. 최원호 감독은 "기존 선수들과 충분히 경쟁을 할만하다. 제구력도 좋고 변화구도 괜찮다"라고 했다. 선발을 목표로 준비 중인 선배들을 긴장시키는 멘트다.
스프링캠프, 시범경기를 거쳐 결정되겠지만, 내년 시즌 선발 네 자리는 사실상 정해졌다. 외국인 투수 펠릭스 페냐, 리카르도 산체스에 김민우 문동주로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남은 한 자리, 5선발을 놓고 치열한 경쟁
이 벌어진다. 구단 수뇌부는 황준서까지 후보로 보고 있다. 뛰어난 잠재력은 기본이고 고교 졸업을 앞둔 투수가 안정적인 투구를 한다.
2024년 김서현, 황준서를 주목하자.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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