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 '이러다 토종은 씨가 마를라.'
남자 프로농구 2023~2024시즌 3라운드 최우수선수(MVP) 선정 결과를 받아 든 농구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얘기다. 이번에도 국내 선수가 MVP로 뽑히지 못한 사실에 대해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는 위기감이 배어있다. 올 시즌 라운드 MVP 판도가 한국 농구의 우울한 현실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에 수원 KT의 외국인 선수 패리스 배스가 3라운드 MVP를 수상하면서 1라운드 디드릭 로슨(DB), 2라운드 아셈 마레이(LG)에 이어 3개 라운드 연속 외국인 선수 독점이 됐다.
1997년 한국농구연맹(KBL) 리그가 출범한 이후 3라운드 연속 외국인 선수 MVP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21~2022, 2022~2023 두 시즌 연속으로 국내 선수들이 총 12번의 라운드 MVP를 석권했던 것과도 정반대다. 라운드 MVP가 처음 도입된 지난 2015~2016시즌 이후 지난 시즌까지 8시즌 동안 외국인 선수가 2개 라운드 연속 MVP를 차지한 적은 있어도 3회 연속은 없었다. 월간 MVP제를 실시했던 1997년부터 2014~2015시즌에는 외국인 선수에게 2회 연속 MVP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과거와 전혀 다른 양상이 전개되면서 "본격적인 '토종 농구'의 위축 시대를 예고하는 경고등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3라운드 연속 외국인 MVP는 한 단면에 불과하다. KBL이 매 경기마다 집계하는 부문별 개인 기록 랭킹을 보면 더 심각하다. 그동안 주요 부문별 랭킹에서 득점, 리바운드, 블록슛은 외국인 선수의 독차지가 당연시 돼 왔다. 골밑에서 그런 역할을 해 달라고 장신, 거구의 외국인 선수를 용병으로 데려다 쓰기 때문이다. 대신 3점슛, 어시스트, 가로채기 등 부문은 용병보다 덩치가 작아도 유리하기 때문에 국내 선수들의 전유물이자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가드-슈터 역할을 하는 아시아쿼터 필리핀 선수가 지난 시즌부터 국내 진출하면서 판도가 또 달라졌다.
8일 현재 어시스트 랭킹 1위는 필리핀 선수 이선 알바노(평균 7.0개)가 차지하고 있고, 3점슛 랭킹 1위는 배스가 평균 2.8개로 이정현(소노)과 공동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나마 가로채기와 3점슛 성공률에서 문성곤(KT)과 이근휘(KCC)가 각각 1위로 체면을 살리고 있지만 둘 모두 알바노의 추격을 받고 있는 상태다. 기존의 '빅맨' 외국인 선수에 이어 작지만 기술 좋은 필리핀 선수까지 가세하면서 토종의 입지까지 자꾸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농구인들은 "과거의 국내 선수들에 비하면 요즘 선수들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한국 농구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하향평준화된 것은 사실"이라고 우려한다. 실제로 김선형(SK)이 좀 더 젊었을 때, 양동근(현대모비스 코치)이 은퇴하기 전과 비교하면 특출난 가드가 아직 없다. 지난 시즌 역대 최고의 슈터로 부상했던 전성현(소노)이 올 시즌 부상으로 주춤하자 대체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서장훈(은퇴) 김주성(DB 감독)같은 토종 센터들은 용병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득점, 리바운드, 블록슛에서 밀리지 않았다. 여기에 문경은(KBL 본부장) 전희철(SK 감독) 현주엽(은퇴) 등 포워드들도 용병들의 득세를 허용하지 않았던 토종 자존심이었다.
이런 가운데 라운드 MVP 선정 방식에 문제를 지적하는 의견도 제기됐다. '용병이 팀 전력의 절반'이라는 농구 종목 특성상 각종 개인기록이 용병에게 몰릴 수밖에 없는데, 수치상 기록 위주로 상을 몰아주는 게 합당하냐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라운드 MVP는 스타 발굴과 한국 농구의 사기 진작의 취지도 담고 있다. 단순 기록 비교에서 뒤지더라도 숨은 공헌도 등 다면적인 평가를 할 필요가 있다. 이러다 토종은 씨가 마를까 걱정이다"고 우려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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