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클린스만호의 아시안컵 부진과 위르겐 클린스만 대표팀 감독의 현실 감각 떨어지는 대처로 한국 축구 분위기가 차갑게 식은 가운데, K리그 현역 최고령 사령탑 김학범 제주 감독(64)이 축구팬들에게 따뜻한 울림을 선사했다. 사연은 이렇다. 제주 구단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제주 지휘봉을 잡은 '학범슨(김학범+퍼거슨)'은 이달 초 한라산을 등반했다. 지난달 11일 한 차례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해발 1950m)을 밟았던 김 감독은 김현희 제주 단장, 구단운영팀 직원 등 프런트와 의기투합 차원에서 또 등산화를 신었다. 한라산이 선물하는 절경을 감상하던 김 감독의 눈에는 익숙한 푸른색 K리그 구단 엠블럼이 들어왔다. 지도자 경력만 30년이 넘는 김 감독이 수원 삼성의 엠블럼을 놓칠 리 없었다. 옆에 있던 김 단장도 "(산에)수원 삼성 깃발을 달고 왔네"라며 놀라워했다.
김 감독은 등산 동료들에게 "인사 한번 하고 가자"고 말하고는 수원팬들이 있는 곳으로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엔 선글라스를 낀 중년 남성의 등장에 적잖이 당황하던 커플은 몇 초 후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이가 김 감독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젊은 남성은 옆에 있는 여성에게 "제주 감독님이셔"라고 소개했다. 김 감독은 친근한 어투로 "염원하러 왔구나?"라고 물었고, 남성팬은 "기도하려고 왔다"고 맞장구쳤다. 김 감독은 "이렇게 염원하는 팬들이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고 말했다. 남성팬이 수원 깃발을 들고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묻자, 김 감독은 흔쾌히 "괜찮다"고 말했다.
덕담도 잊지 않았다. 한라산 정상에서 '기도'하는 두 수원팬을 향해 엄지를 들어보인 김 감독은 "당신들 때문에라도 꼭 올라갈거야"라고 말했다. 비록 2부로 강등된 수원과 제주가 2024시즌 같은 리그에서 만나지 않지만, 이렇게 특정 구단의 감독이 타 구단을 응원하는 건 드문 일이다. 성남, 강원, 광주 등을 맡아 수없이 수원을 적으로 상대했던 김 감독은 진심으로 팬들의 염원이 '빅버드(수원월드컵경기장 애칭)'에 닿기를 바랐다.
한편, 김 감독은 부임 후 구자철, 임채민 등 제주 선수들과 함께 한라산 정기를 받길 바랐다. 하지만 제주도가 2020년 한라산 보호를 위해 하루 최대 탐방 허용 인원을 코스별로 제한하는 '탐방 예약제'를 실시하면서 모든 인원이 함께할 수 없었다. 대신 "내가 먼저 뛰면 선수들도 함께 뛸 것"이라는 생각과 K리그 최고의 팀이 되고자 하는 야망을 품고 대한민국 최고봉에 올랐다.
김 감독은 한라산 정상에 올랐을 때의 성취감을 그라운드에서도 느끼기 위해선 강인한 체력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동계 전지훈련 중 선수들 체력 증진에 힘썼다. 제주 연고지인 서귀포에서 1차 전훈을 실시한 제주는 지난 6일부터 경주로 옮겨 마지막 담금질에 돌입했다. 2023시즌 9위에 그친 제주의 새 시즌 1차 목표는 상위스플릿 복귀다. 또 그 동안 홈 승률이 유독 좋지 않았던 K리그 유일한 섬팀 제주를 '원정팀의 무덤'으로 만드는 것이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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