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아무리 빠른 공을 던져도 스트라이크존에 넣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12일 대전 KIA전에 등판한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한화 이글스)은 왜 제구력이 투수의 생명인지를 여실히 증명했다.
이날 류현진의 구속은 KBO리그 여느 좌완 투수와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다. 직구 구속은 꾸준히 140㎞ 초중반대로 형성됐다. 이날 집계된 투구분석표엔 최고 구속 148㎞가 찍혔지만, 상대팀 KIA나 대전구장 전광판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숫자. 류현진 스스로도 "너무 많이 나온 것 같다. 오류 아닌가"라고 갸우뚱할 정도. KIA 타선도 류현진을 상대로 1회초 연속 안타로 손쉽게 선취점을 뽑았다.
류현진의 진면목은 제구였다. 1회초 실점 이후 류현진은 칼 같은 제구로 KIA 방망이를 침묵시켰다.
백미는 4회초 1사후 KIA 외국인 타자 소크라테스 브리토와의 맞대결이었다. 1사 주자 없는 가운데 좌타자 소크라테스와 만난 류현진은 초구 113㎞ 커브를 바깥쪽 보더라인에 걸쳐 던졌다. ABS 판정은 스트라이크. 이어 던진 2구째 140㎞ 직구는 바깥쪽 보더라인 윗쪽에 걸쳐 또 스트라이크로 판정됐다. 마지막 140㎞ 직구마저 바깥쪽 보더라인 아랫쪽에 정확하게 걸쳤다. 3구 삼진. 소크라테스가 '너무 낮은 것 아니냐'는 제스쳐를 잠시 취하는 듯 했으나, 기계가 내린 판정이었기에 곧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오차 없이 보더라인 중-상-하 순으로 공을 뿌린 류현진의 제구력은 경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런 류현진의 모습과 달리 KIA 선발 장민기는 1회말 연속 볼넷으로 주자를 쌓았고, 결국 노시환에 역전 스리런포를 맞았다. 데뷔 3년차 대체 선발 자원. 테스트 성격의 등판이었기에 긴장감을 어느 정도 안을 수밖에 없는 승부였다. 지난 시즌 홈런왕 노시환에게 얻어맞은 홈런도 충분히 나올 수 있었던 장면. 그러나 이후에도 장민기는 좀처럼 제구를 잡지 못했다. 긴장감을 떠나 영점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결국 타자 일순하는 동안 이닝을 마치지 못한 채 마운드를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수 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KBO리그 국제 경쟁력 퇴보 논란. 제구력이 빠지지 않는다.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은 늘어났으나 제구력은 떨어진다는 게 대부분의 의견이었다. 이 문제의 해답으로 나온 게 스트라이크존 확대. 넓게 적용되는 국제 대회와 비슷한 스트라이크존을 적용해 투수들의 경쟁력과 자신감을 높인다는 취지였으나,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심판마다 달리 적용되는 스트라이크존 문제도 거론됐으나, 제구력 문제는 그동안 현장에서 공통적으로 거론돼 오던 문제였다.
ABS 시대가 시작되자 타자들은 히팅 포인트 조정, 치기 좋은 공을 최대한 골라내는 등 각자 대응법을 하나 둘 씩 찾고 있다. 하지만 보더라인에 걸치는, 소위 제구 좋은 공을 공략하긴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시각이 대다수다. 결국 제구가 ABS 시대 투수의 생존법인 셈. 류현진은 KIA전에서 그 해답을 명확하게 제시했다.
대전=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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