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상의를 해봐야 할 것 같다."
우천 순연된 24일 광주 키움전. 이날 경기를 앞두고 KIA 타이거즈 이범호 감독은 '만약'을 가정해 이렇게 말했다.
당시 KIA는 '대투수' 양현종(36)을 선발 예고했다. 쾌조의 분위기 속에 잡은 개막전 승리. 그 이튿날 홈팬들 앞에서 승리를 책임지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카드다. 하지만 비가 시샘하면서 양현종의 등판 여부는 안갯 속에 빠져 들었다.
이날 양현종의 등판이 무산되면 'B플랜'은 25일 광주 롯데전. 하지만 이 감독은 이에 대해 "상의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유가 있었다. 양현종은 지난해 두 차례 롯데전에서 승리 없이 2패, 평균자책점 11.57로 부진했다. 6월 2일 부산 롯데전에서 2이닝 9실점, 9월 13일 광주 롯데전에서도 5이닝 3실점(비자책)으로 패전 투수가 됐다. 이른바 '상성'이 좋지 않았다. 이 감독은 "작년 롯데전에서 안 좋은 기억이 있다"며 "개막을 앞두고 투수들과 어떤 타이밍에 들어가는 게 좋을 지 이야기를 한 바 있다"고 밝혔다.
주어진 로테이션대로 마운드에 올라가 승리에 힘을 보태야 하는 게 선발 투수의 임무. 그러나 144경기 전체를 보는 팀의 시선에선 이 선발 투수가 과연 어떻게 시즌 스타트를 끊느냐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 감독 입장에선 양현종이 가장 좋은 스타트를 끊을 수 있는 시기를 만들어주려는 나름의 의도가 있었다고 볼 만했다.
그러나 양현종은 정면승부를 택했다. 26일 광주 롯데전 선발 등판을 결정했다.
안 좋은 추억도 어차피 지난 시즌의 기억일 뿐이다. 전체 시즌을 놓고 보면 언젠가는 맞붙어야 할 상대고, 극복해내야 다음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양현종 입장에선 등판 간격이 계속 밀리면서 컨디션 조율에 어려움을 겪는 것보다 정해진 순서대로 일찌감치 정면승부에 나서는 게 오히려 나은 선택이라고 여겼을 만하다.
굳이 피할 이유도 없었다. 지난 시즌 한때 부진했던 양현종이지만, 비시즌과 캠프를 거치면서 한층 더 단단해졌다. 전성기 시절의 구위는 아니지만 구석구석을 찌르는 컨트롤과 상대의 허를 찌르는 수싸움 능력은 여전히 최고다. 무엇보다 언제든 지원사격에 나설 수 있는 든든한 타선의 힘이 있다.
'리빙 레전드'의 첫 발걸음이다. 양현종은 올 시즌 2승만 더하면 통산 170승 고지에 도달한다. 53개의 탈삼진이 더해지면 통산 2000탈삼진에 성공한다. 67⅔이닝을 더 던지면 통산 2400이닝의 금자탑을 세운다. 지난해 부진했던 롯데를 상대로 설욕과 함께 승리까지 얻는다면, 기록 달성의 첫 걸음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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