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지난해 3월 인도에서 열린 월드테이블테니스(WTT)스타컨텐더 남자단식 32강, '세계랭킹 193위' 왼손 에이스 조대성(21·삼성생명)은 '세계 최강' 중국 에이스 판젠동(세계 2위)을 3대2로 꺾었다. 대이변이라고들 했지만 '탁구천재' 조대성을 아는 이들은 "그럴 수 있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1년3개월 뒤인 2024년 6월 18일 조대성이 국제탁구연맹(ITTF) 세계랭킹 21위를 찍었다. 이날 랭킹 기준, 30위권 내 남녀 상위 3명의 선수를 파리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하겠다는 대한탁구협회의 결정에 따라 조대성은 '톱랭커' 장우진, 혼합복식 전용 에이스 임종훈(한국거래소)에 이어 마지막 남은 파리행 티켓의 주인공이 됐다. 1년 전만 해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는 말에 조대성은 "솔직히 저는 계획이 있었다"며 싱긋 웃었다. "작년에 절친들에게 나 올림픽 한번 가볼게라고 했더니 친구들이 '될놈될'이라면서 '네가 하면 될 것같다'고 응원해주더라. 말의 힘을 믿게 됐다"고 했다.
'넘버3'를 향한 이상수(삼성생명), 안재현(한국거래소), 오준성(미래에셋증권)과의 치열한 한솥밥 경쟁은 마지막 순간까지 불을 뿜었다. 조대성이 5월초 사우디스매시 8강과 함께 세계 23위에 오르며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지만 선배 안재현이 4~6월 매대회 4강 이상을 찍으며 맹추격했고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컨덴더 대회 4강에 오르며 급기야 세계 랭킹이 역전됐고, 조대성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렸다. 파리행이 걸린 마지막 슬로베니아 스타컨텐더, 같은 시각 치러진 16강서 안재현이 휴고 칼데라도에게 패하고 조대성이 승리하며 명운이 엇갈렸다. 조대성이 21위(1185점), 안재현이 25위(1045점). 조대성의 파리행이 결정됐다.
2002년생 조대성은 대광중 3학년 때인 2017년 남녀종합선수권 단식 4강, 신유빈과 혼합복식 최연소 결승행, 대광고 1학년 때인 2018년 16세에 최연소 결승행을 이룬 자타공인 '탁구천재'다. 2019년 체코오픈에서 신유빈과 혼합복식 최연소 우승, 삼성생명 입단 후인 2022년 남녀종합선수권 단식에서 우승했다.
폭풍성장 이면엔 극심한 성장통도 있었다. 대광중 1학년 때 팔꿈치 수술을 했고 실업 1년차인 2021년 팔꿈치 연골 수술 후 슬럼프가 찾아왔다. 조대성은 "탁구를 그만두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부모님, 감독님께 그만두겠다고 했었다"고 털어놨다. 자꾸만 아파오는 팔도, 승자만 살아남는 승부의 세계도, 평생을 해왔던 탁구도 싫어졌다. 그러나 그는 믿어주는 눈빛들의 응원에 힘입어 다시 라켓을 잡았다. 탁구의 숙명을 피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 파리올림픽 출전권이 선물처럼 찾아왔다.
소감을 묻는 질문에 조대성은 "그동안 도전을 회피해왔던 내가 도전에 정면승부하게 된 것, 정면으로 부딪칠 줄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답했다. "어릴 때부터 상황이 닥치면 겁이 많이 났다. 늘 이겨야만 했고 자주 피하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봐오셨던 주세혁 감독님이 저를 누구보다 잘 아신다. 이번엔 안되더라도 끝까지 도전하기로 했다. 이렇게 끝까지 도전한 적이 없다. 그 부분에서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철승 감독님, 부모님, 삼촌(조용순 감독), 친구들, 나를 믿어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절대 나혼자는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같은 팀에서 함께하는 베테랑 (이)상수형이 있어서 끝까지 도전할 수 있었고, 좋은 라이벌 (안)재현형이 있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재현이형의 도전 없이 사우디스매시 8강 성적 하나로 올림픽에 가게 됐다면 뭔가 찝찝했을 것같다"며 감사를 표했다.
지난 2월 안방서 열린 부산세계탁구선수권은 큰 자극제가 됐다. 팔꿈치 부상을 이유로 국가대표 선발전에 기권했었다. 선배들이 중국 에이스들을 돌려세우는 현장에서 '나도 저 무대에서 함께 뛰었으면'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후회가 됐다. 관중석에서 응원을 하면서도 내가 저 자리에서 함께 뛰었으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올림픽의 기회는 놓치지 않았다. 기회가 왔을 때 꼭 잡고 싶었다"며 간절함을 전했다. "올림픽 기회는 하늘이 내린다는 말을 믿게 됐다. 그전엔 동의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험난한 과정을 지나고 보니 100% 믿게 됐다"며 웃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이자 1992년 바르셀로나부터 2004년 아테네까지 4회 연속 올림픽에 나선 레전드 이철승 삼성생명 감독 역시 "세계랭킹이 역전된 후 2주간 잠을 못잤다"며 스승으로서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대성이가 낙담할 모습을 생각하면 잠이 안오더라.대성이의 노력이 보상 받은 것이 제일 감사하고 기쁘다"며 제자의 쾌거를 기뻐했다.
조대성의 파리행에 힘입어 삼성생명은 1988년 서울올림픽(김완, 김기택) 이후 2024년 파리올림픽까지 8회 연속 올림픽 선수를 배출하는 '탁구명가'의 명예를 이어가게 됐다. 경기도 용인 삼성휴먼센터 훈련장 식당에서 만난 배드민턴, 레슬링 등 다른 종목 동료들이 "축하한다"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이철승 감독 역시 "한국 스포츠가 어렵다고 하는데 삼성생명은 탁구, 배드민턴, 레슬링 등 아마추어 종목을 적극 지원해주고 있다. 파리올림픽 배드민턴에 삼성 소속 5명이 나간다. 탁구도 다행히 8회 연속 역사를 이어가게 됐다. (조)대성이 덕분에 정말 많은 축하인사를 받았다"며 미소 지었다. 조대성은 "이 감독님이 미팅에서 1988년 이후 올림픽에 삼성 선수가 못나간 적이 한번도 없다고 하시는데 삼성에서 안좋은 역사의 '최초'가 되면 안된다는 생각이 강한 동기부여가 됐다"며 웃었다. "레전드 삼성 선배들(이철승, 주세혁, 유승민, 이상수)께 누가 되지 않도록 잘하겠다. 파리에서 메달을 따서 나도 계보에 올라갈 수 있는 선수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12년 만의 메달을 목표로 한국탁구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걸 걸고 도전해보겠다. (장)우진이형 (임)종훈이형와 함께라면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2028년 LA올림픽에선 (장)우진이형의 에이스 역할을 나도 해야 한다. 피하지 않고 도전하겠다. 또래인 린윤주(대만), 하리모토 도모카즈(일본) 등 톱랭커와도 경쟁할 수 있는 선수가 되겠다. 그래야 메달을 딸 수 있다"고 했다.
시련을 딛고 올림픽의 꿈을 이룬 '21세 탁구천재'의 마지막 한마디는 이랬다. "나는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운'이 정말 좋았다. 나 혼자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늘이 도왔다. '운 천재'라고 생각한다."
용인=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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