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시상대 맨 꼭대기에 올라서기까지 단 한 걸음 남았다.
'배드민턴 여제' 안세영(22·삼성생명)이 한국 배드민턴의 새역사를 '화룡점정'으로 완성하는 일만 남겨놓고 있다.
세계랭킹 1위 안세영은 4일(한국시각) 벌어진 2024년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단식 준결승에서 인도네시아의 그레고리아 마리스카 툰중(세계 8위)을 물리치고 결승에 진출했다.
이로써 안세영은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방수현(여자단식 금) 이후 28년 만에 한국 배드민턴이 여자단식 메달을 품어 보는 기쁨을 선사했다.
여기서 만족할 수 없다. 안세영은 5일 오후 5시55분 중국의 허빙자오(세계 9위)를 상대로 금메달에 도전한다. 허빙자오는 전날 준결승에서 카롤리나 마린(세계 4위·스페인)이 기권한 덕에 결승에 합류했다. 안세영은 허빙자오와의 상대 전적에서 8승5패로 우위다.
28년만의 쾌거는 물론, 한국 배드민턴사에서 전무후무가 될 만한 역사를 새로 작성할 수 있을지 관심사다. 월드스타 출신 방수현(52)을 뛰어넘을까.
방수현은 '살아있는 레전드'이자, 한국 단식 선수 유일하게 세계배드민턴연맹(BWF)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한국의 자랑이다. 한국 여자단식은 그동안 방수현 이후 김경란(팀테크니스트 감독), 전재연(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연구원), 성지현(현 대표팀 코치) 등 대를 잇는 선수가 있었지만 방수현의 업적을 능가하지는 못했다.
방수현은 애틀랜타올림픽 금메달뿐 아니라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금메달, 1996년 전영오픈 우승 등 1990년대 세계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하지만 '마지막 퍼즐' 세계개인선수권에서 정상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품고 은퇴했다. 방수현의 세계선수권 최고 성적은 1993년 여자단식 준우승이다.
테니스의 그랜드슬램(호주오픈+프랑스오픈+윔블던+US오픈 우승)과 달리 배드민턴에서는 그랜드슬램이 정식 개념으로 정립돼 있지 않다. 다만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단체·개인·혼합단체전) 등 최정상급 대회 중 3개 이상을 석권했을 때 '그랜드슬램'이라 붙여 준다.
안세영은 이제 레전드 방수현을 뛰어넘을 태세다. 지난 2022년 세계남녀단체배드민턴선수권대회 여자단체 우승을 차지한 안세영은 2023년 세계개인선수권에 이어 항저우아시안게임까지 평정했다. 이 과정에서 8월 BWF 세계랭킹 발표에서 방수현 이후 27년 만에 세계 1위에 등극해 지금까지 유지하는 등 정상의 1년을 보냈다.
항저우아시안게임 이후 근 1년 만에 다시 맞은 파리올림픽, 안세영은 '어머니뻘' 대선배 방수현이 이루지 못한 꿈을 꾸려고 한다. 방수현이 (애틀랜타)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나이가 24세, (히로시마)아시안게임 정상에 올랐을 때 22세였다.
안세영이 이번에 우승하면 '역사의 시간'도 앞당기게 된다. 2017년 말 중학교 3학년 신분으로 국가대표선발전을 역대 최연소(당시 15세)로 통과한 안세영은 방수현보다 1년 빠른 21세에 아시안게임을 평정했다. 이번에 올림픽 금메달을 추가하면 방수현의 '최연소 배드민턴 금메달' 기록도 2년 단축하게 되는 셈이다.
안세영은 작년 세계 1위에 등극했을 때 "세계랭킹이 목표가 아니다. 방수현 선배님처럼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싶다"며 '전설'을 롤모델로 삼아왔다.
MBC 해설위원으로 안세영의 경기를 중계하고 있는 방수현은 "내가 세계선수권에서 은, 동메달까지 따봤다. 작년 세계선수권에서 나의 한을 풀어 준 안세영이 이번 올림픽에서 내가 이루지 못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길 바란다"며 응원했다.
파리=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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