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야만의 시대, 행복의 나라란 무엇일까. 절대 권력에 맞선 피 끓는 사람들의 외침이 무더위가 절정인 여름 극장가 더 뜨겁고 강렬하게 문을 두드렸다.
상관의 명령에 의해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정보부장 수행 비서관과 그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든 변호사의 이야기를 그린 정치 휴먼 영화 '행복의 나라'(추창민 감독, 파파스필름·오스카10스튜디오 제작)가 광복절을 하루 앞둔 오는 14일 관객을 찾는다.
1979년 발생한 10.26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사건을 주도한 김재규 정보부장의 심복이자 거사에 연루된 박흥주 육군 대령과 그를 변호한 태윤기 변호사를 비롯한 재판 변호인단의 실화를 영화화한 팩션극인 '행복의 나라'는 올여름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이하 '탈출', 김태곤 감독)를 시작으로 '파일럿'(김한결 감독) '리볼버'(오승욱 감독)에 이어 네 번째 여름 대작이자, 고(故) 이선균의 마지막 영화로 출사표를 던졌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최악의 위기를 맞은 극장가에서도 무려 475만명의 관객을 극장가로 이끈 '남산의 부장들'(20, 우민호 감독)과 고사 위기에 빠진 충무로에 1312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극장을 생존하게 만든 '서울의 봄'(23, 김성수 감독) 모두 70~80년대 정치 혼란의 현대사를 다루며 메가 히트를 터트린바, '남산의 부장들'과 '서울의 봄' 사이 발생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박흥주 육군 대령의 이야기를 꺼낸 '행복의 나라'는 확실히 '남산의 부장들' '서울의 봄'과 결을 같이 하면서도 신선한 호기심을 유발해 관객의 구미를 당기게 만든다.
시사회를 통해 국내 첫 공개된 '행복의 나라'는 실화가 주는 묵직함과 이를 바탕으로 한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관객을 분노하게 만들고 또 울컥하게 만들며 내면의 파동을 요동치게 만든다.
10.26 대통령 암살 사건에 대한 재판을 중심으로 구성한 '행복의 나라'는 실제 공판이 진행되는 도중 여러 차례 법정에 은밀히 쪽지가 전달된 이른바 '쪽지 재판'으로 불린 역사적 사실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겨 담아 눈길을 끈다. 유일한 군인 신분이었기에 단심제가 적용된 박흥주 대령에게 첫 공판 이후 단 16일 만에 최종 선고가 내려지면서 '졸속 재판'이라는 오명을 얻은 야만의 재판 역시 고증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담아낸 것 또한 신선하다.
소재도 소재지만 조정석과 이선균 그리고 유재명으로 구성된 빈틈 없는 완벽한 열연도 '행복의 나라'의 미덕 중 하나다. 특히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들게 된 변호사 정인후 역의 조정석은 초반 권모술수적인 태도에서 박태주(이선균)를 만나면서 성장하고 각성하는 진화형 캐릭터로 변신해 '행복의 나라' 전반을 이끈다. 실존 인물인 태윤기 변호사를 비롯해 당시 재판에 참여했던 약 20여명의 변호인을 농축한 가공의 인물이지만 '생활 연기 달인'인 조정석을 만나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리얼리티로 영화 속을 활보한다. 코믹 원맨쇼 '파일럿'으로 단숨에 300만 관객을 이끌며 티켓파워를 입증한 조정석이 '파일럿'의 웃음기를 남기지 않고 새로운 얼굴을 갈아 끼우며 활화산 같은 열연을 쏟아내는 지점도 관객에게 충분히 보는 맛을 더한다.
'탈출'에 이어 '행복의 나라'를 통해 관객과 마지막 인사를 건넨 이선균의 잔잔한 목소리도 마음을 동요하게 한다. 불같은 조정석과 반대로 소신과 강직함으로 관객 앞에 나선 이선균. 군인으로서 명령에 복종해야만 했던 박흥주 육군 대령의 뚝심을 완벽히 표현했다. 이선균을 향해 "얼마나 좋은 배우를 잃었는지"라며 먹먹한 아쉬움을 드러낸 추창민 감독의 절절한 마음이 영화 속 엔딩에 담뿍 담겨있다.
뿐만 아니라 밀실에서 재판을 도청하며 결과를 좌지우지하는 합수부장 전상두로 분노를 유발하는 유재명의 파격 변신도 관객의 '심박수'를 올리는 원동력이 된다. '서울의 봄' 속 전두광(황정민)만큼 영화 전체를 진두지휘하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정인후와 박태주와 대척점에 있는 전상두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유재명은 확실히 미치광이였던 황정민과는 전혀 다른 발톱을 드러내지 않은 섬뜩한 전두환의 모습으로 '행복의 나라'를 관통한다.
'행복의 나라'는 '남산의 부장들'과 '서울의 봄' 사이의 이야기를 다룬 지점에서 관객에게 충분한 재미를 선사할 여름 대작으로 위용을 갖췄다. 다만 절대악의 광기 하나로 관객의 심박수를 최고치로 끌어 올린 '서울의 봄'보다 다소 차분하게 정제된 느낌이라 도파민을 원한 관객에겐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행복의 나라'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이야기와 배우들의 차진 케미라는 미덕이 있는 작품으로 올여름 묵직하게 마지막 대미를 장식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한편, '행복의 나라'는 오는 14일 개봉한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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