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으로서 보호해주고 도와주시길 바란다."
손준호(32·수원FC)는 지난 11일 수원시체육회관 2층에서 연 공식 기자회견에서 시종일관 '억울함'을 호소했다. 핵심은 자신은 승부조작에 가담한 적이 없지만, 중국 공안의 협박에 못 이겨 '뇌물수수 혐의'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중국축구협회가 자신에 대해 영구제명 징계를 내렸고, 이 결정이 국제축구연맹(FIFA)에 의해 인용되면 더 이상 세계 어느 곳에서도 축구선수로 활동할 수 없게 된 상황을 억울하다고 했다. 기자 회견이 이어지는 내내 눈물을 쏟으며 자신이 결백하고, 중국의 결정이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기자회견 말미에 "거짓은 하나도 없다. 응어리가 100% 풀리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오늘부로 모든 것을 말했다고 생각한다. 더는 할 말이 없다"며 "국민으로서 보호해주고, 도와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손준호의 기자회견과 해명을 지켜본 대다수 국민들은 오히려 이번 기자회견을 통해 손준호에 대한 '측은지심'을 거둬들이는 형국이다.
손준호 본인은 '거짓없이 모든 것을 밝혔다'고 했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의혹을 전혀 해명하지 못했다. 감정에 호소하는 내용으로 '자신이 억울하게 당했다'는 식의 주장을 이어갔지만, 명확한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얼버무렸다. 때문에 핵심적인 의혹은 해소되지 않았고, 오히려 '중국이 어떤 면에서는 관대한 처벌을 내렸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처럼 국민들이 손준호에 대해 비판적으로 돌아선 것은 그의 해명이 상식과 국민정서의 수준에서 한참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3700만원은 별거 아니다?
1차적으로 손준호의 해명 기자회견에서 해소되지 않은 의혹은 그가 팀 동료였던 진징다오 20만위안(약 3700만원)을 받았다는 대목이다. 중국 공안과 검찰이 승부조작 연루의 핵심적인 증거로 지목한 내용이지만, 손준호는 이걸 '그냥 받을 수도 있는 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정확히 어떤 명목으로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그저 "불법적인 돈은 아니었다" "정확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휴대폰을 복원했는데, 하필 그 시기의 대화 내용만 없다"고 해명했다.
상식적으로도 납득이 되지 않는 말이고, 국민정서로 비춰봐도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다.
20만 위안은 현재 환율로 한화 약 370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이다. 누군가에게는 1년치 연봉에 해당할 수도 있다. 물론 당시 약 40억원의 연봉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손준호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돈', '왜 받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낮은 금액'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큰 돈'인 20만 위안을 '그냥 호의로 준 돈'이라고 믿을 사람은 거의 없다.
중국 검찰이 손준호를 '승부조작 연루'와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하고, 법원도 이를 유죄로 판정한 근본적인 이유도 바로 이 20만 위안을 받은 이유를 객관적으로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손준호에게 이 돈을 준 진징다오는 승부조작의 핵심인물이다. 당장의 승부조작에 대한 대가성 현금이 아니었더라도 앞으로 벌일 승부조작을 위한 사전 포석으로 볼 수도 있다.
만약 손준호가 중국 검찰에게도 이 20만위안의 정체에 대해 기자회견처럼 '아무런 대가 없이 받은 돈'이라고 해명했다면, 유죄판결이 내려진 것도 충분히 납득이 된다. 3700만원을 그냥 '호의의 선물'로 주고받을 수도 있는 저렴한 액수로 취급하는 손준호의 태도는 국민 여론을 차갑게 냉각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판결문도 안 보겠다?
이상한 점 투성이인 손준호의 해명에서 가장 이상한 부분은 바로 중국 법원의 판결문에 대한 태도다. 손준호에 대해 중국 사법당국의 어떤 이유로 왜 유죄 판결을 내렸으며, 이에 대해 어떻게 처분한다는 내용이 상세히 담겨 있는 문서다.
손준호가 공감대를 전혀 얻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억울함을 말로만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결문이 있다면, 그 안에 들어간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해가면서 자신의 입장을 해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법리적으로 왜 판단이 잘못되어 있다거나 혹은 사실관계가 잘못됐다거나 하는 식으로 반박할 수 있다.
그런데 손준호는 오히려 이 판결문의 존재를 외면하고 있다. 기자회견에서 손준호는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의 에이전트는 "(손준호가) 판결문을 받기는 했는데, 중국어로 되어 있어 내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지금 다시 열람하려면 손준호가 직접 중국에 가서 신청해야 하는데, 트라우마가 심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당장 열람할 필요성도 없다"고 말했다.
이는 손준호와 그의 에이전트가 법에 대해 대단히 무지하거나 아니면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는 태도다.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려면 상대방(중국 사법당국)이 어떤 부분에서 잘못된 판단을 했는 지 구체적인 증거와 문서로 반박해야 한다.
하지만 손준호는 오로지 자신의 주장만을 감정적인 어투로 반복할 뿐이다. 중국법원의 판결문은 이런 손준호의 주장에 '팩트'를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손준호의 주장이 맞다면 판결문에 적시된 세부 내용이 왜 틀렸는지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판결문의 존재는 더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손준호는 판결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으며, 심지어 앞으로도 열람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스스로 판결문을 공개하라는 이상한 주장을 한다. 애초 판결이 나왔을 때 판결문을 따로 보관하지 않은 것도 상식에 맞지 않는데, 판결문 비공개의 책임을 어물쩍 중국에 돌리는 태도 역시 일반적이지 않다.
결국 손준호의 '도와달라'는 호소는 아무런 공감대도 얻지 못했다. '20만 위안(3700만원)'에 대한 태도와 형편없는 금전감각, 자기 위주로 각색된 도덕성, 사실관계를 흐리는 일방적인 주장만이 되풀이 됐기 때문이다.
이제 손준호에게 남은 건 두 가지 길 뿐이다. 여러 해명되지 않은 의혹을 팩트에 기반해 상세히 다시 밝혀 국민적 공감대와 전방위적 도움을 이끌어내는 방법. 아니면 자신의 주장만을 감정적으로 되풀이하다 축구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선택은 손준호에게 달려있다.
한편, 수원FC 구단은 13일 손준호 측과 상호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했다. 원래 손준호와 수원FC의 계약은 12월까지로 되어 있었다. 약 3개월 정도 일찍 계약을 상호해지하게 됐다. 수원 구단과 손준호 측은 지난 6월 계약당시 '입단 전의 일로 인해 선수활동을 할 수 없게 될 경우 계약 해지를 협의한다'는 내용의 '안전장치' 조항을 계약서에 명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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