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마의 '2시간10분' 벽이 마침내 깨졌다.
케냐의 루스 체픈게티(30)는 14일(한국시각)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2024년 시카고 마라톤에서 2시간09분56초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는 지난해 9월 베를린 마라톤에서 에티오피아의 타지스트 아세파(26)가 세운 종전 여자 풀코스 세계기록인 2시간11분53초를 2분 가까이 앞당긴 신기록이다. 2위는 2시간17분32초의 수투메 아세파 케베베(에티오피아)로 체픈게티보다 7분 이상 뒤졌다.
체픈게티는 여자 마라톤에서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2시간10분' 벽을 처음으로 돌파한 선수가 됐다. 호주 경제학자 사이먼 앤거스 교수는 2019년 2월 스포츠와 운동의 과학에 발표한 논문에서 '여자 마라토너가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의 한계는 2시간05분31초'라며 '현실적으로는 2시간10분 돌파가 '한계에 대한 도전'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전문가들 역시 '2시간10분'을 여자 마라톤의 한계라고 봤다.
하지만 불가능은 없었다. 체픈게티가 '한계'를 넘었다. 체픈게티는 종전 개인 최고 기록(2시간14분18초)을 4분22초나 단축했다. 체픈게티는 출발부터 맹렬한 페이스로 첫 5㎞를 15분 만에 주파했다. 현지 해설가들은 그의 엄청난 질주를 '인류가 달에 착륙한 것 같은 충격'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체픈게티는 남자부 중상위권 선수를 '페이스 메이커'로 삼고, 2시간10분 벽을 돌파했다. 남자부에서도 체픈게티보다 빠르게 완주한 선수는 단 9명뿐이었다.
'여자 마라톤 전설' 폴라 래드클리프(영국)가 2003년 4월 런던 마라톤에서 2시간15분25초의 세계기록을 세운 뒤 여자 마라톤은 한동안 '기록 정체'를 겪었다. 래드클리프의 기록은 무려 16년이 지난 후에야 깨졌다. 2019년 10월 시카고 마라톤에서 브리지드 코스게이(케냐)가 2시간14분04초에 완주하며 처음으로 2시간15분 벽을 깼다.
이후 글로벌 스포츠브랜드가 케냐와 에티오피아 여자 마라토너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기록 경신을 유도했다. 2020년대에는 무려 4명이 2시간15분 이내의 기록으로 완주했다. 아세파가 베를린 마라톤에서 코스게이의 기록을 2분11초나 단축한 세계 신기록을 세우자, 1년 뒤 체픈게티가 또 한번의 역사를 이뤄냈다. 나이키의 후원을 받는 체픈게티가 아디다스의 아세파 기록을 깨자 미국 현지 언론은 "나이키가 아디다스를 넘어섰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참고로 한국 여자 마라톤 최고 기록은 지난 2018년 3월 서울국제마라톤에서 김도연이 세운 2시간25분41초다.
2019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마라톤 챔피언인 체픈게티는 시카고와 유독 궁합이 잘 맞았다. 2021년 시카고 마라톤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체픈게티는 2022년에 이어 올해까지 3번째이나 시카고 마라톤에서 월계관을 쓰게 됐다. 올해는 역사적인 기록까지 세워 기쁨이 배가됐다. 체픈게티는 우승 후 "내 꿈이 이뤄졌다. 세계 기록은 항상 내 마음속에 있었다"고 말했다. 체픈게티는 이어 지난해 시카고에서 남자 세계 신기록(2시간00분35초)을 세웠지만 4개월 뒤 케냐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동료 켈빈 키프텀을 추모했다. 그는 "이 세계기록을 키프텀에게 바친다"며 "그가 있었다면 타이틀을 방어하고 다시 세계기록을 수립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남자부 경기에서는 존 코리르(케냐)가 2시간02분43초로, 2시간04분39초의 후세이딘 모하메드 에사(에티오피아)를 제치고 우승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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